각계각층 '팔방미인' 사법연수원 24기
로펌·검찰서 '전문 영역' 구축
[ 안대규 기자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원희룡 제주지사, 이상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더불어민주당), 금태섭 민주당 의원,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
사법연수원 24기(1993년 입소) 출신 현역 정치인들이다. 다른 기수보다 정계 진출이 많았고, 법원 검찰 법률회사(로펌)에서도 자기만의 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전문가 리더’가 즐비한 것이 24기의 특징이다. 법조계에선 1992년 치러진 34회 사법시험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당시 예고도 없이 실제 사건을 던져주고 쟁점과 답을 구하는 문제가 출제돼 수험생들의 충격이 컸다고 한다.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하며 여러 생각을 정리한 수험생들의 합격률이 높았다.
‘밥 잘사주는 누나’에서 ‘나다르크’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4선)는 연수원에 입소할 때 ‘임신 중’이었다. 김재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21기)와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결혼했다. 24기 동기들은 그를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였다”고 회상했다. 7년6개월간 판사 생활을 거쳐 2002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정책특보,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딸이 다운증후군을 앓으면서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책임지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이상민 위원장(4선)은 변호사 시절 장애인 보호에 앞장섰다. 정계로 진출해선 법조계 기득권을 깨보겠다며 사법시험과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취득’ 폐지 등을 주도했다.
금태섭 의원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재직 시절 한 일간지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기고문을 올렸다가 검찰총장 경고를 받고 검사 옷을 벗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줄어들지 않는 ‘검찰 권력’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여권 내 ‘강골’로 평가받는다. 검찰 출신으로 ‘제주가 낳은 천재’로 불리는 원희룡 지사는 학력고사 전국 수석과 사법시험 수석으로 연수원 입소 전부터 유명했다.
아시아 PEF업계 ‘간판스타’ 김광일
경제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24기는 아시아 사모펀드(PEF)업계의 ‘간판 스타’ 김광일 MBK파트너스 대표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사위인 김병주 MBK 회장과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국내 최대 PEF 운용사인 MBK는 2005년 설립 후 14년 만에 한·중·일 3개국에서 홈플러스 딜라이브 등 30여 개 기업을 인수했다. 현재 운용자산이 18조원에 이르는 아시아 대표 PEF가 됐다.
로펌에선 양영태 법무법인 지평 대표가 두드러진다. 연수원 2년차 때 사법시험 수험생들의 베스트셀러로 평가받게 된 《주관식 헌법》을 원 지사와 공동 집필했다. 양 대표가 2000년 설립한 지평은 현재 국내외 변호사 220여 명이 근무하는 대형 로펌으로 성장했다. 해외 진출에도 앞장서 ‘로펌 세계화의 주역’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검사 출신 박은재 율촌 변호사는 한진그룹 오너의 ‘물컵 갑질’ 사건을 대리해 무혐의를 받아냈다.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된 이중근 부영 회장의 석방도 이끄는 등 대기업 오너 관련 형사사건에서 강하다는 평가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인 한동수 율촌 변호사도 포스코를 대리해 일본제철(옛 신닛테쓰스미킨)을 상대로 한 특허무효소송에서 승소를 이끌었다. 광장 공정거래그룹을 이끄는 정환 변호사는 D램, 항공사, 자동차 부품 등 국제 카르텔(담합) 사건 전문가다. 바른의 상사·기업송무 그룹을 이끄는 백웅철 변호사는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횡령 혐의 재판을 맡아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이병기 태평양 변호사는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 삼성그룹과 롯데그룹 간 ‘빅딜’을 성사시킨 인수합병(M&A) 전문가다. 박찬문 김앤장 변호사는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의 제일은행 인수 등을 자문하며 금융 분야에서 20년 이상 자문 경험을 쌓았다.
전두환 구속 법리 발견한 정한중
검사 중에는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문찬석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이 ‘금융·증권범죄 수사통’으로 유명하다. 2016년 대검으로부터 증권범죄(시세조종) 1급 공인전문검사로 ‘블랙벨트’를 인증받았다. 2013년 서울중앙지검 초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을 거쳐 ‘금융범죄 중점 검찰청’인 서울남부지검의 초대 2차장검사로 부임해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증권사와 펀드매니저들의 불법 행위 등을 적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부패범죄 특수통’ 여환섭 청주지검장은 지난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수사단장에 임명됐다. 최근 김 전 차관과 그의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윤중천 씨를 구속해 주목받고 있다. 동기들로부터 “술을 한 잔도 못하고, 여성적인 면도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업무에 관해선 ‘독종’으로 알려져 있다. 여 단장에게 조사받을 땐 “웃으면서 들어갔다가 울면서 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검사 출신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디지털포렌식(PC, 휴대폰 분석을 통한 범죄 증거 확보)’ 수사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연수원 시절 펜티엄급 PC를 직접 조립해 현직 검사들에게 열 대를 팔았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같은 검사 출신 김영문 관세청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고 12년 후배로 노무현 정부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 밑에서 행정관을 지낸 인연으로 2017년 관세청장에 올랐다. 관세청장으로 한진그룹 수사와 마약류 밀반입 적발 등을 이끌었다.
동기들로부터 ‘원칙주의자’로 평가받는 조의연 서울북부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는 2017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지난 3월 검찰에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24기 동기회 회장인 이재만 법무법인 청파 대표변호사는 주병진, 송일국, 김현중, 편승엽, 장은영 등 연예인 사건에서 승소를 이어가 ‘무죄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은 연예인 사건 전문 변호사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 위원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정한중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수원생 신분으로 “재직 중 불소추 특권을 지닌 대통령 재직기간을 공소시효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법리를 발견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를 가능케 한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평가받는 유영하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에서 검찰 수사와 재판까지 모두 대리해왔다. 24기 가운데선 체신부 장관을 지내고 56세에 입소한 송언종 전 광주시장도 화제의 인물이다. 당시 사법연수원장보다도 나이가 많아 동기들 사이에선 ‘장관님’으로 불렸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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