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희·김지미의 60년대 '춘향 전쟁', 판소리극에 담다

입력 2019-05-27 17:30  

정동극장 '창작ing 시리즈'
올해 첫 작품 '춘향전쟁'
다음달 5~23일 무대에



[ 윤정현 기자 ] 1960년대에도 명절 연휴는 국내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였다. 1961년 설날을 앞두고 ‘춘향전’을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이 열흘 사이 잇달아 개봉했다. 신상옥 감독·최은희 주연의 ‘성춘향’과 홍성기 감독·김지미 주연의 ‘춘향전’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하야카와 고슈가 ‘춘향전’(1923년)을 내놓은 이후 ‘춘향’은 한국 영화계의 단골 소재이자 흥행 카드였다. 영화 ‘자유만세’ ‘죄 없는 죄인’ 등을 제작한 최인규 감독 문하에서 함께 배운 두 감독이 당대 최고 여배우들을 춘향으로 앞세워 맞붙었기에 연초부터 극장가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동극장이 다음달 5일부터 23일까지 ‘2019년 창작ing 시리즈’ 첫 번째 작품으로 선보이는 소리극 ‘춘향전쟁’은 한국영화사에서 최대 라이벌전으로 꼽히는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두 영화의 대결을 두고 한 일간지에서 쓴 ‘춘향전쟁’이란 표현을 제목으로 따왔다. 같은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 두 편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진검승부를 벌인 영화사의 한 장면이 무대에 펼쳐진다.

‘춘향전쟁’은 당시 상황에 극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영화 ‘성춘향’의 개봉을 앞두고 신 감독이 녹음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한다. 원본 필름을 갖고 잠적해버린 ‘폴리아티스트(영화·드라마에서 필요한 소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 때문이다. 그는 왜 필름과 함께 사라진 것일까. 다음날 영화는 예정대로 개봉될 수 있을까. 꼬리를 무는 질문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간다.

흥행은 신 감독과 배우 최은희가 함께한 ‘성춘향’의 완승이었다. 하지만 ‘춘향전쟁’의 관람 포인트는 승부의 결과가 아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소리 그 자체다. 작품 속 폴리아티스트는 무대에서 영화 ‘성춘향’의 영상에 소리를 덧입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콩을 굴려 파도 소리를 내고 풍선으로 불꽃놀이 소리, 우산으로는 폭포 소리를 만든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물로 내는 각종 소리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인기인 ‘에이에스엠알(ASMR: 특정 자극을 통해 심리적 안정이나 쾌감 등을 느끼게 되는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창작국악그룹 ‘그림(THE林)’의 연주가 어우러진다.

음악감독과 작곡을 맡은 신창렬 그림 대표는 “영화 ‘성춘향’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음향효과라는 생각에서 이번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물리적인 마찰로 인한 소리의 탄생과 속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소리를 귀로도 듣고 눈으로도 보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소재와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더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신 대표는 “고전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낸 판소리와 1960년대 영화계 이야기를 오늘의 음향으로 다시 풀어냈다”며 “시대를 관통하는 개념으로 소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극중 신 감독과 변사 역을 맡은 소리꾼이 주인공과 화자를 오가면서 작품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를 통해 마치 무성영화를 무대에서 재연하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당시 영화계에서 벌어진 사건과 유명인들의 뒷이야기 외에도 프로레슬링 선수 김일의 박치기, 통행금지, 시발택시 등 끊임없이 등장하는 추억 속 소재들로 복고와 향수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신 감독·소리꾼 역에 김봉영과 오단해, 폴리아티스트 역에 오대석과 김대곤이 번갈아 출연한다. 뮤지컬 ‘아랑가’ ‘러브레터’, 연극 ‘필로우 맨’ 등으로 잘 알려진 중견 연출가 변정주가 무대화한다. 변정주가 정동극장 창작ing 시리즈의 연출을 맡은 것은 2017년 뮤지컬 ‘판’에 이어 두 번째다. 작창은 김봉영 판소리공간 예길 대표가 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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