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삼성자산운용 연금사업본부
한국형TDF 6428억원 유치
퇴직연금 시장 후발주자 '돌풍'
[ 강영연 기자 ]
한국의 퇴직연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16년 말 147조원에서 지난해 190조원으로 늘어났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퇴직연금을 이구동성으로 새 ‘성장엔진’으로 꼽는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 시장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투자 상품은 타깃데이트펀드(TDF)다. TDF는 은퇴시기를 고려해 생애주기별로 자산을 배분해주는 연금펀드다. 2016년 말 629억원이었던 TDF시장은 1조7389억원(5월 28일 기준)으로 30배 가까이 커졌다.
이 중 6428억원이 삼성자산운용의 한국형TDF에 들어와 있다. 김정훈 삼성자산운용 연금사업본부장은 “삼성은 운용사 중에서 퇴직연금 시장에 늦게 들어온 편이지만 경쟁력 있는 TDF를 중심으로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며 “미국, 호주 등 연금 선진국을 연구한 결과 퇴직연금 시장에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큰 상품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인에게 딱 맞는 상품’ 개발
삼성자산운용은 2015년 초부터 연금사업 확대를 목표로 TDF 개발을 시작했다. ‘직접 상품을 개발·운용하는 것보다는 퇴직연금 선진국의 운용사와 협력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미국 캐피털을 파트너로 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캐피털이 연금 운용에 전문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캐피털의 운용자산(2000조원) 중 1600조원이 연금이다. 김 본부장은 “캐피털은 1, 3, 5, 8년 성과에 따라 매니저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8년간 성과에 대한 보상이 가장 크다”며 “장기투자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어 연금 운용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협력을 통해 향후 액티브펀드 운용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캐피털은 삼성전자의 주주로 삼성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었다.
삼성자산운용은 그해 9월 연금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이를 계기로 캐피털과의 본격적인 협업이 시작됐다. 미국 시장에 맞는 상품을 한국식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김 본부장은 “미국인과 한국인의 생애주기별 소득과 지출에 큰 차이가 있었다”며 “1년 넘게 협의가 이어졌고 한 달에 한 번꼴로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고 회상했다.
미국인은 보통 20대 초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한국은 군입대, 어학연수, 인턴십 등으로 20대 중반 이후에 처음으로 직업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은퇴시점은 미국은 60대 초반, 한국은 50대 초반 정도다.
한국은 일하는 기간이 미국에 비해 짧다. 지출 내역도 다르다. 김 본부장은 “한국은 의료비 지출은 적은 반면 교육비 부담이 크다”며 “국민연금이 있어 소득대체율은 미국보다 낮게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분산투자로 올해 수익률 8.87%
삼성한국형TDF의 최대 강점으로는 철저한 글로벌 분산 투자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70여 개국 1200여 개의 주식, 채권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한국 주식, 채권 비중은 포트폴리오의 2%에 불과하다.
다른 운용사 상품이 30~40% 이상을 한국 자산으로 채우는 것과 비교된다. 김 본부장은 “퇴직자들이 선진국 수준의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산투자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개인들의 한국 자산 투자비중이 높아 TDF에까지 한국 자산을 많이 넣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성과도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형TDF2045의 수익률은 연초 이후 8.87%(지난 28일까지)에 달한다. 가장 수익률이 낮은 상품(한국형TDF2015)도 5.09%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0.38% 오르는 데 그쳤다. 삼성자산운용은 고객의 은퇴 시기에 맞춰 TDF2020·2025·2030·2035·2040·2045·2050 시리즈를 운용하고 있다. TDF 이름 뒤의 숫자는 은퇴시기를 뜻한다.
올 들어서는 근로복지공단과 함께 3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의 연금 시스템 개선에도 나섰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가입자들이 모바일 링크를 따라가면 바로 금융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투자할 수 있는 상품에는 한국형TDF도 포함된다. 김 본부장은 “한국형TDF의 성과가 나타나면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만 가입하던 고객들의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빠르게 성장하는 DC형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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