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경 기자 ]
원작에 충실하면서 무난하게 흘러갔다. 지난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내용을 잘 전달한다. 극적 몰입도가 높아 중소형 뮤지컬로 손색이 없었다. 다만 연극연출가인 박근형 극단 골목길 대표가 무대화한 작품임을 고려하면 뭔가 허전함이 남는 무대였다.
‘베니스의 상인’은 서울시뮤지컬단의 올해 첫 정기공연이다. 박 대표가 뮤지컬을 연출한 것은 ‘위대한 캣츠비’ 이후 11년 만이다. 그동안은 주로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 아버지’ ‘페스트’ 등 개성이 강한 색깔의 연극을 선보였다.
극은 원작처럼 베니스 상인 안토니오가 사랑에 빠진 친구 밧사니오의 청혼을 돕기 위해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빚보증을 서며 시작된다. 누구나 잘 아는 고전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흘러갔다. 장면이 빠르게 교차되고 무대 구성이 감각적으로 이뤄졌다. 밧사니오가 청혼하는 과정과 안토니오의 비극을 번갈아 비추며 대조적인 상황을 잘 그려냈다. 음악은 스스로 돋보이기보다 극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눈에 띄는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는 없었지만 작품에 어울리는 선율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 무대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파격적 해석과 날 선 풍자, 연극적 놀이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기득권층인 안토니오가 유대인인 자신을 무시하자 느낀 모멸감, 이로 인해 형성된 복수심과 고뇌 등 샤일록의 이면을 비춰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샤일록에 많은 비중이 실렸지만 박 대표가 끌어내고자 했던 메시지는 잘 전달되지 않았다. 관객이 샤일록의 내면에 깊이 다가가 공감하긴 어려워 보였다.
샤일록의 부하였던 랜슬롯에 대한 해석도 평범했다. 극에서 광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랜슬롯이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시대를 시퍼렇게 풍자하는 박 대표 특유의 독설을 퍼부었으면 어땠을까. 국내 중소형 창작뮤지컬의 공식에 갇히지 않고, 그동안 연극에서 보여준 날 것 그대로를 마음껏 표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은 다음달 16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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