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일본에서 막 올린 '웃는 남자'

입력 2019-05-30 17:27  

'문화산업 중계무역' 가능성 높인 작품
뮤지컬 한류의 첫걸음으로도 성공적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



앞을 못 보는 가냘픈 여인 데아가 그윈플렌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자 공연장은 삽시간에 정적에 빠져들었다. 이내 곳곳에서 흐느낌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일본어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웃는 남자’의 객석 광경이다.

지난해 처음 우리나라에서 제작돼 인기를 누린 ‘웃는 남자’가 올해 일본에서 성공적인 흥행몰이를 했다. 일본의 대형 뮤지컬 제작사인 도호 주식회사가 전 세계 판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EMK뮤지컬컴퍼니로부터 일본 공연권을 확보해 무대에 올렸다. 해외 유명 작품의 판권을 확보해 우리말로 번안해 막을 올리는 라이선스 뮤지컬이 시장을 주도하던 수준을 넘어섰다. 글로벌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작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세계 시장에 되파는, 일종의 ‘문화산업의 중계무역자’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대한민국 뮤지컬 산업은 이렇듯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일본어로 제작된 뮤지컬 ‘웃는 남자’는 우리말 초연을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 기본적인 극의 골격도 변화가 없거니와 무엇보다 오리지널 제작진인 오필영 무대디자이너가 도호 주식회사의 요청으로 무대 비주얼의 약 50%를 우리말 초연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서울에서 초연을 본 관객이라면 다소 아쉬움이 느껴질 수도 있다. 자동화 장치를 대거 활용해 세련되게 물 흐르듯 전개되던 무대가 일본 공연에서는 많은 부분이 간소화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정기 레퍼토리라기보다 관객 반응을 살피는 초연의 투어링 프로덕션이라서 이동이 간편한 세트를 제작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초연 반응이나 성과가 비교적 호의적이어서 향후 장기 공연이 시도되면 우리말 무대만큼이나 화려한 볼거리가 더해지지 않을까 예상된다.

일본 배우들의 연기와 우리말 버전의 싱크로율은 꽤 높다. 특히 그윈플렌으로 등장하는 우라이 겐지의 보이스 컬러는 날카롭고 영리한 이미지를 유사하게 구현해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목소리가 주는 느낌 자체만 보자면 한국어 초연의 남자 주인공 중 한 명인 박효신과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우리 나이로는 30대 후반인 그는 텔레비전과 무대를 오가며 사랑받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스타 연기자다. 2000년 데뷔해 올해로 20년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다. 뮤지컬 ‘데스 노트’의 라이토와 ‘두 도시 이야기’의 찰스, 프랑스 뮤지컬의 일본어 프로덕션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벤볼리오, ‘황태자 루돌프’ ‘엘리자벳’에서 루돌프를 연기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에서도 특유의 섬세하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에선 정성화와 양준모가 번갈아 맡았던 우르수스로는 일본의 국민배우 야마구치 유이치로가 등장해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오사카의 우메다 예술극장 공연에서는 쉬지 않고 이어지던 박수갈채가 주연배우들을 세 차례나 다시 무대로 불러내고서야 마무리됐다. 특히, 박자에 맞춰 극장을 크게 울렸던 박수갈채는 그윈플렌과 데아 그리고 어린 그윈플렌을 연기한 아역배우가 함께 손잡고 무대에 등장한 순간에 나왔다. 1층 객석은 전원 기립했고 배우들도 함박웃음으로 답례했다. 글로벌 공연계에서 ‘뮤지컬 한류’의 행보가 새로운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딛는 순간이었다.

감동은 비단 평론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글로벌 무대를 향한 우리 뮤지컬 관계자들의 끝 모를 도전에 마음을 담은 응원의 기립박수를 보낸다.

jwon@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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