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춘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평가가 엇갈린다. 미·일 간 밀월과 동맹 관계가 재확인됐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 외무성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는 (일본) 외교 자산”이라고 자찬했다. 반면 골프 투어를 하고 스모 선수에게 트로피를 수여하고 로바다야키를 즐기는 트럼프의 모습에서 관광여행을 즐기러 온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는 소리도 들린다. 일본에선 심지어 미·일 정상 간 만남의 최대 성과가 ‘한국 제외’라고 비아냥대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트럼프, 외교안보·무역에 딴 모습
군사적 관계에선 미·일 동맹이 유달리 빛난 만남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가가’호에 탑승한 장면은 동맹의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이 많다. 이미 일본은 최근 미국으로부터 F-35 전투기를 100대 이상 구매할 것이란 사실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가호에서 “일본은 동맹국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F-35 함대를 보유하게 됐으며, 가가호는 새로운 장비를 갖추고 역내를 넘어 다양한 위협을 방어할 것”이라고도 했다.
무역협상에선 서로 핀트가 맞지 않았다. 공동 합의문도 없었고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8월에 큰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일본 측에선 “합의는 하지 않았다”고 에둘러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미국은 어떤 관계가 없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아베 총리 또한 농산물 협상에서 일본의 농업을 지키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을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선 단지 중국 때문에 힘들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국민이 대중 무역이 실패했다고 받아들인다면 트럼프로선 내년 대선 가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그는 아베 총리에게 “잘 부탁한다”며 일본과의 무역협상에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과의 강한 동맹을 역설하면서도 무역에서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했다.
아베, 美만 아니라 中에도 정성
정작 눈여겨볼 대목은 아베 총리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미·중 양국 간 안정적인 경제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 중요한 사안”이라며 “미·중 양국이 대화를 통해 건설적으로 문제 해결을 꾀할 것을 기대한다”고만 했다. 그만큼 중국의 눈치를 보는 아베 총리다. 지난 7일에는 청융화 주일 중국대사 송별 파티에 직접 참석하기까지 했다.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아베 총리의 만남도 성사될 것으로 전해진다. 조만간 일본은 중국과 국방장관 회담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한다.
세계 무역이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면서 국가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세상이다. 정치 외교에선 분명 동맹과 적이 존재하지만 경제와 무역에선 아군도 적도 없다. 오직 국익만 있을 뿐이다. 특히 패권 국가가 아닌, 패권 추수국의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선 트럼프와 아베의 ‘혼네(本音·본심)’가 비슷할 수도 있다. 이들은 투 트랙으로 모든 국가를 전략적이고 세심하게 관리한다. 그리고 협상하면서 자신의 국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 트럼프 대통령의 혼네가 무엇인지 아베 총리에게 물으려는 외국 정상도 많다고 한다. 이것이 외교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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