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영업력·보험급여 등재 영향
국내 시장규모 2000억대 달해
[ 전예진 기자 ] 지난 28일 종근당이 인지장애 개선제 ‘글리아티린’(사진·성분명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임상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도네페질과 글리아티린을 함께 복용한 환자가 도네페질만 복용한 환자보다 인지 능력이 덜 감퇴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약은 이탈리아 이탈파마코사가 개발했는데요. 이번 심포지엄을 위해 글리아티린의 고향 이탈리아 카멜리노대에서 아멘타 교수를 한국으로 모셔왔습니다. 종근당 측은 “글리아티린의 효과와 안전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고 자평했죠.
종근당이 이 행사를 연 이유는 글리아티린의 유효성 논란 때문입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는 글리아티린의 전문의약품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성분이 미국에서는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데다 임상 결과를 보면 전문의약품으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효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글리아티린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에선 의약품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폴란드,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에서만 허가받았죠. 그런데 한국에서만 유독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시장 규모는 2000억원에 이릅니다.
글리아티린의 인기에는 대웅제약의 영업력과 보험급여 등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 국내에 들여온 것은 대웅제약인데요. 치매 시장이 커지는데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을 간파하고 전 세계 의약품을 샅샅이 뒤진 끝에 찾아낸 제품이 글리아티린이라고 합니다. 의사들도 초기 치매 환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어 의례적으로 처방해주다 보니 의사와 제약사 모두 ‘윈윈’한 셈이었죠. 대웅제약은 10년 전 연간 100억원어치도 팔리지 않던 글리아티린을 수천억원대 블록버스터로 키웠습니다. 다 죽어가던 이탈파마코사를 대웅제약이 살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글리아티린이 하도 잘 팔리다 보니 2017년에 판권을 두고 종근당이 대웅제약과 다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대웅제약은 판권을 빼앗긴 뒤 자체 개발한 제네릭 ‘글리아타민’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건약은 효능이 불분명한 콜린알포세레이트 의약품이 보험재정을 갉아먹는다고 지적합니다. 이 때문에 보험급여 의약품 목록에서 삭제하고 미국처럼 건기식으로만 판매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정부가 일반약 원료의 건기식 확대 방안을 내놓으면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예로 들기도 했는데요. 보건복지부도 임상적 유용성이 높지 않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최근 치매약으로 사용되던 아세틸 엘카르니틴이 임상 재평가를 통해 효과가 없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제약업계의 위기가 커지는 상황입니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시장을 사수할 수 있을까요.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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