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원순 기자 ] ‘부실(不實)’의 사전적 의미는 ‘튼튼하지 못하고 약한 상태’ ‘실속이 없고 충분하지 못함’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의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한 것에 비해 결과가 신통찮으면 부실이다. ‘한국 학교 교육이 부실하다’ ‘공공의료가 강조되면서 의료산업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식의 문제 제기가 그런 접근이다.
하나의 기득권 제도로 굳어진 학교 교육이 막대한 투입 예산에 비해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되풀이되는 ‘공교육 부실론’이다. 학업성취도, 기초체력, 예능·취미·특기교육 등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2015년 892만 명이었던 학령인구(6~21세)가 올해 805만 명으로 급감한 와중에도 정부가 교육청에 보낸 예산은 39조원에서 55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10년 뒤인 2029년에는 625만 명으로 급락할 것이라는 게 지난달 통계청 전망이지만, 교육예산 증가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학생 수나 학업성취 정도와 관계없이 무조건 내국세의 20.27%를 교육청에 주게 돼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손보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다.
일종의 ‘문화지체(cultural lag)’ 같은 현상이 학교 교육의 내용과 수준에서도 나타난다. 학생들의 ‘디지털 일상’보다 한참 늦은 코딩교육도 그렇고,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비슷비슷한 교실 풍경도 마찬가지다.
이런 와중에 국가기술표준원이 학생용 책걸상 크기와 형태에 관한 규격을 바꾸겠다고 한 것은 학교 교육을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커진 학생들 덩치에 맞춰 18년 만에 한국산업표준(KS)을 바꾸는 일이다. 설명과 강의 위주에서 토론과 개인별 활동 등 다양한 수업이 되도록 책상과 교실의 개념 자체가 확 바뀌었으면 하는 기대가 생긴다.
많은 학생이 집이나 학원에서는 좋은 학습용 가구와 조명기구를 사용하고 있다. 학생도 급감하는 판에 ‘학교는 후진 곳’이라는 이미지를 떨쳐 낼 필요가 있다. 교실이 창의적 학습공간이 되면 학교 공부로도 기초학력은 충분히 다져질 것이다. 교육 예산은 이런 데 쓰여야 한다.
학교보다 몇 발 앞서 가는 경우도 흔할 정도로 젊은 학부모들 교육열이 대단하다. 배울 만큼 배운, 정보기술(IT)로 무장한 신세대다. 자녀도 기껏 한둘이다. 학교 교과에 다 맡기지 않고 학원 과외에도 의존하지 않은 채 아이를 스스로 가르친다는 부모도 적지 않다. 《엄마 공부가 끝나면 아이 공부는 시작된다》는 책까지 펴낸 맹렬 부모도 있다. ‘부실 공교육’도 ‘과잉 사교육’도 문제라며 직접 나선 현대의 맹모(孟母)다. ‘자식 교육은 부모의 최대 관심사.’ 시대가 바뀌어도 그대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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