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간에는 취·창업 활동
"사회단절 없어 軍생활 재밌다"
[ 임락근 기자 ]
대한민국 육군은 ‘청년 Dream, 육군드림’이란 이름으로 각 부대에 취·창업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8기계화보병사단을 비롯한 7개 부대를 시범부대로 시작해 올해 2월부터는 24개 사·여단으로 확대했다. 창업동아리는 200여 개, 취업동아리는 300여 개가 활동 중이다. 육군은 이 프로그램을 단계별로 전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2019 육군창업경진대회’는 ‘스마트 강군’을 만들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전망이다.
출발선에 선 병영문화 혁신
육군에서 시작한 ‘드림 프로젝트’는 전군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점 취득 등 학업역량 증진, 취·창업 활동 경험이 핵심이다. 국방부는 전군의 장병이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웹페이지를 개발 중이다. 지난 4월부터 장병들이 일과 후 휴대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 조치다. ‘드림 프로젝트’와 관련한 모든 콘텐츠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국방부의 목표다.
육군이 시범 부대를 선정하면서 창업동아리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육군 A사단 소속으로 홍창민 중위가 이끄는 B팀이 대표적인 사례다. 홍 중위 등 4명으로 구성된 B팀은 기부와 광고를 결합한 앱(응용프로그램) 개발을 목표로 지난 4월 시작한 창업동아리다. 특정 가게를 지나가면 광고가 뜨고, 리워드가 발생해 해당 지역 상권에 기부되는 모델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한 김경현 일병은 디자인에 재능이 있어 시제품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다. 때마침 내무반 동기인 이종일 일병이 대학 때 앱을 개발해본 경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의기투합했다. 여기에 단기장교인 홍 중위가 가세했다. 대학 때 컴퓨터정보통신공학을 전공한 데다 고교 교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어 장병들을 통솔할 수 있었다. 사단법인 스파크의 민영서 대표는 “군부대는 한 공간에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경험을 가진 이들끼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을 배우자”
육군이 창업 프로그램을 병영 문화에 이식하려는 것은 군과 사회의 단절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해서다. 인구 급감으로 해마다 입대자가 줄고 있는 데다 ‘군복무=시간낭비’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징병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과 시간 중엔 제대로 된 교육·훈련을 받고,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 일과 후엔 사회 복귀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청년 Dream, 육군 드림’의 골자다.
이 프로그램의 밑그림을 그린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은 ‘초일류 육군’의 3대 역할 중 하나로 ‘연결자’를 꼽기도 했다. 강창구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소장)은 “청년들에게 군 복무를 사회와 단절된 채 시간만 때우는 ‘인생의 낭비’ 기간이 아니라 인생의 꿈과 희망을 열어주는 장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롤모델은 이스라엘군이다. 사이버전에 특화된 정보 부대인 ‘8200부대’는 창업가들의 산실로 불릴 정도다. 이곳을 비롯해 이스라엘의 주요 부대는 ‘탈피오트’라고 불리는 과학·기술 장교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특화된 장병은 8~9년 동안 복무하면서 정보·통신·과학 등 전문지식을 실전에서 습득한다. 상당수는 제대 후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가로 변신한다. 보안업체 ‘체크포인트’, 메신저업체 ‘바이버’, 자율주행 기술 업체 ‘모빌아이’, 미국 나스닥 상장 제약사 ‘컴퓨젠’과 같은 유명기업 설립자 대부분이 이들 부대 출신이다.
군과 사회 이어줄 창업동아리
전문가들은 ‘개발 연대’에 군이 핵심 엔지니어를 사회로 내보내는 양성소 역할을 했듯이, 미래 군(軍)도 사회와 긴밀히 연결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 한계도 많다. 육군의 병영혁신 ‘실험’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일과 후 휴대폰 사용을 허가할 때만 해도 장병들이 게임중독에 빠진다거나, 훈련을 게을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극소수의 탈선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장병이 일과 후의 일상을 더 생산적인 일로 보낼 수 있게 됐다”며 “얼차려 등 각종 군 폭력 사고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창업동아리 운영에서도 현실적인 제약이 적지 않다. 제73사단 소속 최원준 일병은 “앱 개발이 목표지만 영내에서는 노트북을 이용할 수 없어 아쉽다”고 털어놨다. 제대로 된 교재나 교사가 없는 것도 제약 요인이다.
그럼에도 많은 장병이 창업 동아리 활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물품을 중개해주는 앱을 개발하고 있는 손주형 상병은 “같은 관심사를 가진 동업자를 만나 창업이라는 현실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했다. 군에서의 경험이 실제 창업으로 연결되는 사례들도 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이원철 대위는 군의관·민간인 의사 동료들과 함께 경구수액인 ‘링티’를 개발했다. 양승찬 스타스테크 대표는 강원 인제군에 있는 제3포병여단에서 복무하면서 동료 장병들과 함께 친환경 제설제를 개발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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