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수영 기자 ] 본지가 ‘정권의 코드연구 강요에 질린 국책연구기관 연구인력이 대거 탈출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한 다음날인 6일 기자에게 수십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국책연구원의 한 박사’라고 소개한 발신자는 기사 내용에 불만을 토로했다. “연구 방향 간섭에 좌절을 느끼는 연구자가 있더라도 극소수에 불과하고, 퇴사자 수가 급증한 것은 수도권 선호 때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보수 정부 때 연구 방향 간섭이 훨씬 심했다”는 항변도 했다. 이 ‘박사’는 노동 분야 국책연구기관의 A원장이다.
유일하게 항의성 메일을 보낸 A원장과 달리 현장 연구인력들의 메일은 보도를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한 국책연구원 연구인력은 “통쾌한 기사였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연구기관의 수뇌부와 현장 연구인력 간 괴리감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A원장의 주장은 ‘연구 방향 간섭이 없다’는 내용부터 현장 분위기와 달랐다. 취재 중 만난 연구인력 상당수는 현 정부 들어 개별 연구원의 자율식 연구보다 정부 정책적 방향을 담은 합동식 연구과제가 많이 하달됐다고 지적했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한목소리를 내는 중국 사회과학원식 모델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도 컸다.
연구인력들이 수도권 선호 때문에 퇴사한다는 A원장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국책연구원 지방 이전은 2013년 시작됐다. 퇴사자 수는 그로부터 5년 뒤인 지난해 갑자기 급증했다. 게다가 퇴직자들은 대부분 지방대로 옮겼다.
A원장은 보수 정부의 연구 방향 간섭이 지금보다 더 심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본인은 지난 정부에서 해당 기관 연구본부장 등을 맡아 토론회 등에서 정부와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A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곳은 노동 분야의 유일한 국책연구기관이면서도 지난해 중반 고용참사가 불거지는 동안 “최저임금 탓이 아니다”고 줄곧 부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다른 국책연구기관과 정부가 최저임금 영향을 인정한 뒤 연말이 돼서야 뒤늦게 최저임금 급등의 부작용을 경고했다.
A원장의 메일에서 안타까운 대목은 ‘혹시 국책연구기관 수뇌부가 현장을 모르고, 조직 구성원의 목소리를 잘 못 듣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확신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