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이어 경영해도 무조건 할증
국가가 자식보다 재산 더 가져가
노르웨이·싱가포르 등은 없애
[ 오상헌/서민준 기자 ]
정부가 대기업 최대주주에 적용하는 상속·증여세 할증률(최대 30%)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기업하려는 의지를 살리고 투자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취지다.
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대주주 보유 지분을 매각 또는 상속할 때 물리는 ‘경영권 프리미엄 할증세’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고 모 대학에 경영권 프리미엄 규모를 실증적으로 파악하는 연구용역을 맡겼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행 상속·증여세 할증이 기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데다 안 그래도 높은 상속·증여세율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는 재계 호소에 따라 적정성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최대주주 할증 제도가 도입된 이후 정부가 세율 인하를 검토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는 최대주주 지분을 팔거나 상속할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 덕분에 실제 지분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인정받는 점을 고려해 최고 세율(50%)에 10~30%를 추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실질 최고 세율이 65%(50%+50%×30%)로 세계 최고 수준이 된 이유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과도한 상속·증여세로 인해 ‘기업할 의욕’이 꺾인다고 호소하는 상공인이 늘고 있다”며 “정부가 최대주주 할증률을 독일 수준(5~20%)으로만 낮춰줘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 "가업승계 막는 상속·증여세율 낮추는 게 근본 해법"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상속세 7155억원을 내겠다”고 국세청에 신고한 건 작년 11월이었다. 고(故)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주)LG 지분 8.76%(상속세법상 지분가치 1조1890억원)에 대한 세금 납부를 신고한 것. 그가 상속세를 최고세율(50%)보다 더 높은 세율로 신고한 건 ‘최대주주 지분을 상속할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 10~30% 할증한다’는 법 규정 때문이었다. 자식보다 국가가 더 많은 재산을 고 구 회장으로부터 상속받게 된 배경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외부에 매각할 때 생기는 것 아니냐. 4대째 경영을 이어가는 LG에 ‘프리미엄 할증’을 물리는 게 합당하느냐”는 얘기가 재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기획재정부가 최대주주 할증 과세의 적정성을 들여다보는 가장 큰 이유는 과세 형평성이다. 적자기업이거나 사양산업 업체인 경우 최대주주 지분이 오히려 시가보다 낮게 평가받는데도 할증 과세를 적용받는 건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만 해도 높은데 여기에 할증까지 부과하면 납세자 부담이 과도하게 커진다”(안경봉 국민대 법학대학 교수)는 경영계와 학계의 주장도 영향을 미쳤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최대주주 지분을 50% 미만 상속·증여할 때는 20%, 50% 이상 상속·증여할 때는 30% 할증토록 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해선 절반(각각 10%와 15%)으로 깎아주되 2020년까지 법적용을 유예해주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국내 모 대학 연구진이 2011~2012년 성사된 인수합병(M&A)에 따른 경영권 프리미엄을 측정한 결과 -20%~59%로 다양하게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미국 영국 등은 이런 점을 감안해 사안별로 국세청이 프리미엄을 측정한 뒤 실질 이득에 대해 과세한다”고 설명했다.
LG그룹처럼 지분을 상속받은 뒤 계속 경영하면 사실상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는데도 할증 과세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지분 50%+1주’에만 해당하는 만큼 그 이상의 지분에 대해선 할증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재부는 일단 사안별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산정하는 영미식 방법은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세청의 판단이 과도하게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각계 다양한 목소리를 법안에 모두 담을 수 없는 만큼 기재부가 할증 세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풀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가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건 상속·증여세율(최고 50%) 인하다. 과도한 세부담 탓에 원활한 가업승계가 어려워지고 기업 해외이전 등의 부작용이 생기고 있어서다. 이런 점을 감안해 노르웨이 싱가포르 오스트리아 등 선진국들은 앞다퉈 상속세를 없애거나 면세 범위를 늘리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할증세율 인하도 필요하지만 상속·증여세율 자체를 낮추는 게 실질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오상헌/서민준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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