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 '공연' 포함돼 있으면
'문화제·캠페인' 이름으로 허가
[ 배태웅 기자 ] 집회·시위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올 들어서도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공연이 포함돼 있으면 ‘문화제’나 ‘캠페인’이란 이름을 붙여 쉽게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허점 때문이다. 작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사실상 정치적 목적을 띤 문화제와 캠페인만 18건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허가된 광화문광장 사용 건수는 총 290건이다. 이 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및 산하단체가 허가를 받아 연 문화제 및 캠페인은 12건이다. ‘故김용군 시민대책위’ ‘사법농단 규탄 국민연대’ 등 진보단체 등이 신고한 행사 등을 합치면 18건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화제와 캠페인은 대부분 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하거나 정부 정책을 규탄하는 사실상의 집회·시위였다.
지난해 7월 12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서울시에 신고한 광화문광장 사용신청 내역에는 캠페인이라는 명목으로 ‘전국건설인한마당’이 적혀 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행사는 건설노조의 총파업 대회였다. 10월 서울개인택시운송조합이 신고한 ‘택시운행질서확립캠페인’은 풀러스, 타다 등 승차공유 업체를 규탄하는 집회였다. 11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신고한 ‘공무원119문화제’ 역시 공무원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연가파업을 결의하는 총파업 대회였다.
행사명부터 정치적 시위인 문화제도 있었다. 지난 2월 16일 열린 ‘김경수지키기 사법농단 규탄 홍보 문화제’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관련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무죄를 요구하며 연 집회였다. 김 지사 지지자들은 같은 달 23일에도 같은 문화제를 열었다. 세월호 유족 단체인 4·16연대가 지난달 25일 연 ‘범국민촛불문화제’도 세월호 수사를 방해한 자유한국당의 해산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광화문광장은 원칙적으로 집회·시위가 금지돼 있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여가 및 문화활동으로만 광장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같은 목적에 어긋나면 서울시는 사용 허가를 반려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17개월 동안 신청된 402건의 광장 사용 신청 중 조성 목적에 어긋나 반려된 경우는 12건에 불과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장 사용 신청서에 간단한 행사명과 주제, 공연 및 행사 개요 등만 내면 되다 보니 반려할 근거 자체가 부족하다”고 했다. 신고 내용과 실제 행사가 달라도 불이익을 주거나 처벌할 수 있는 규정도 없다.
일부 보수 시민단체는 서울시의 광장 사용 반려가 편향적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가 광장 사용 목적에 어긋난다며 반려한 12건 중 보수단체의 반려 건수만 5건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태극기 부대’ 관련 단체가 토크콘서트를 허가받았지만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촉구 집회가 된 적도 있었다”며 “서울시가 이런 사태를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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