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우리 경제의 하방 위험이 장기화될 것이란 진단을 내놨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통상 마찰로 인해 예상보다 대외 여건이 불확실해진 탓이다. 당초 내달로 예정됐던 ‘제조업 르네상스’ 대책 발표를 이달로 앞당기겠다는 긴급 처방도 내놨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경제 불확실성이 당초 예상보다 조금 더 커진 상황”이라며 “앞으로 대외 여건에 따른 하방위험이 장기화될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이처럼 어두운 경제전망을 내놓은 것은 미·중 통상마찰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특성상 글로벌 1~2위 국가 간 ‘고래 싸움’에 엄한 우리나라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돼왔다.
윤 수석은 “최근 통상마찰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교역과 또 제조업 활동이 예상보다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나타나는 통상마찰이 글로벌 백본(backbone) 경쟁 부분과 결부가 돼서 조금 더 장기화 될 소지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우리 수출의 대들보 역할을 해온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여건이 더욱 악화될 수 있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미국과 중국, 유로존의 경기가 2018년을 기점으로 하방하는 세계 경제의 둔화와 함께 우리 경제의 성장세도 하방 위험이 커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부는 수출 부진 등 꺼져가는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제조업 전반에 걸친 혁신 방안을 담은 ‘제조업 르네상스 대책’을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이다. 당초 계획보다 한 달 남짓 앞당긴 셈이다. 오는 8월에는 문재인 정부 3대 경제 신(新)동력 중 하나인 미래차 대책을 포함해 올 하반기 중 섬유패션,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 등의 업종별 혁신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윤 수석은 이 밖에도 “저소득층에 대한 금융 지원, 금융소비자 보호, 노후 대비 자산 형성 지원 등의 내용을 포함한 포용금융비전을 7월 중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 경제의 하방 위험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재정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윤 수석은 “가계소득 국가채무비율이 기존에 38.2%에서 36%로 낮아졌다”며 “가계나 기업과 정부가 어떤 여러 가지 여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여력이 좀 더 커지게 됐다”고 언급했다. 채무비율이 낮아진만큼 재정을 더욱 투입할 수 있다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계정 통계의 기준연도를 기존 2010년에서 2015년으로 개편하면서 수치가 조정됐을 뿐 재정건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 수석 역시 일각에서 제기되는 재정 확대 우려를 의식한 듯 “향후 경제상황을 감안해서 재정 증가속도를 적절히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윤 수석은 악화된 대외 여건 속에서도 우리 경제와 관련한 긍정적인 지표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월 7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경상수지와 관련해 “수출이 부진했고 배당금 지급 등 일시적 요인이 있어 소폭의 적자를 나타냈다”며 “5월에 흑자로 돌아설 것인 만큼 크게 우려할 사안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0.4%)를 나타낸 것은 “대외여건의 영향이 60∼70%로 가장 컸고, 한편으로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재정 집행이 부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며 “정부 부문에 저희가 노력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상당 부분 상당히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지수에 대해서는 “다행히 4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경기지수 하락이 일단 멈췄다”며 “대외여건에 따라 경기가 추가로 하락할 수도 있고 반등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런 하강 국면 속에서 바닥을 다지는 국면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문제의 경우 “9·13 대책 후 아파트 매매가가 정점에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일부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매수세가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전반적으로 관망세 속에 안정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고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용 증가세가 나타나는 가운데 일자리 핵심계층인 30∼40대 취업자 수가 줄어들고 있고 경기 하방 위험을 고려할 때 고용 여건도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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