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무역전쟁으로 주목받는 희토류
[ 정연일 기자 ]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희토류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높이고, 중국을 대표하는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의 거래를 금지시키자 중국은 보복 카드로 희토류 미국 수출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장시성의 희토류 생산시설을 직접 둘러봤으며, 중국 관영매체들은 희토류 수출 금지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미국도 이에 대비해 호주 등 희토류 생산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희토류의 무기화 가능성과 영향을 일곱 가지로 나눠 살펴본다.
(1) 희토류가 전쟁의 수단으로 떠오른 이유는
희토류는 첨단산업에 많이 사용된다. 미국의 정보기술(IT)업체들이 중국에서 희토류를 공급받지 못하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 이보다 큰 문제는 전투기와 미사일 등 군수물자에도 희토류가 쓰인다는 점이다. 미국의 F-35 전투기와 토마호크 미사일, 이지스 미사일 방어 시스템 등은 희토류가 없으면 제작하기 어려워진다. 일례로 F-35 전투기 한 대를 생산하려면 417㎏가량의 희토류가 필요하다.
(2) 희토류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세계 희토류 생산은 사실상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해왔다. 미국 역시 수입 희토류의 약 8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에 볼모로 잡히게 됐다”고 관측했다.
다만 이런 사실은 희토류 매장량 분포와는 큰 관련이 없다.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약 4400만t으로 추정되며, 이는 세계 전체의 37.9%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이 외에도 브라질과 베트남에 각각 2200만t 정도 묻혀 있으며 자국 광산에서 희토류 원석을 채굴할 수 있는 국가는 예상외로 많다.
(3) 중국은 어떻게 희토류를 장악했나
중국은 희토류 생산과 정련에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다양한 원소가 소량으로 분포돼 있는 희토류 원석을 정련하려면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염산, 황산과 방사능이 발생하는 등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심한 선진국에서는 희토류를 정련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의 저가 공세도 중국이 희토류 생산을 독점하게 한 주요 요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대부분이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수지가 맞지 않아 생산을 멈춘 상태다. 중국은 지금도 매년 세계 희토류 수요의 두 배 정도를 생산해 경쟁 국가들은 희토류를 생산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게 되는 기형적인 시장 구조가 형성됐다.
(4) 중국은 희토류를 무기로 삼은 적이 있었나
중국은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를 무기로 사용한 적이 있다. 2010년 9월 일본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에서 일본 순시선을 들이받은 혐의로 중국 선박 선장을 구속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일본 관광 금지와 함께 일본으로의 희토류 수출을 크게 줄였다. 일본에서 희토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희토류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일본 정부는 사실상 항복했다. 중국 선장을 조건 없이 석방했다. 하지만 중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부 차원의 사과까지 요구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 선장에게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5) 중국이 미국에 수출을 제한할 가능성은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지난달 27일 공개한 문답록에서 ‘희토류가 미국의 부적절한 억압에 대응하는 무기가 될까’란 질문에 “누군가가 중국의 희토류로 생산한 제품을 사용해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 한다면 중국 국민이 행복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발개위는 지난 4~5일 이틀간 세 차례에 걸쳐 희토류산업 관련 회의를 열었다. 중국증권보는 희토류의 전략적 비축 등을 포함한 정책이 마련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이 작성을 준비 중인 ‘중국판 블랙리스트’에 희토류 수출 중단 카드가 쓰일 가능성이 높다.
(6) 희토류 수출 제한하면 미국의 타격은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가 미국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이 충분한 양의 희토류를 자체 수급할 수 있게 되려면 최소 5년이란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희토류 전문가로 통하는 잭 리프턴 테크놀로지메탈리서치 대표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중 희토류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중국산 희토류가 없어도 미국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미국의 연간 희토류 수입량이 4000t, 액수로는 1억7500만달러(약 2074억원)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CNBC는 미국이 전자기기 완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들며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제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들이 판매하는 컴퓨터 장비 안에 들어 있는 희토류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7) 미국의 대응방안은
미국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여러 가지 대응에 나섰다. 미 화학기업 블루라인은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 라이너스와 합작기업을 세워 미국에 희토류 정련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에서 희토류를 정련하는 일에 제한 요소가 되는 여러 환경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 정부는 이어 자국 광산기업들이 생산하는 희토류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중이다. 미 국방부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가능성이 제기된 직후인 지난달 29일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의존율을 낮추는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단기적으로 미국 기업들의 신속한 희토류 생산 돌입을 돕고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값싼 중국산 희토류에 맞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또 2002년 폐쇄됐던 캘리포니아주의 희토류 광산이 올 1월 가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토류 없이는 F-35 전투기·토마호크 미사일도 못 만든다
'희귀한 흙' 희토류 어디에 쓰이나
희토류(稀土類)는 말 그대로 ‘희귀한 흙’을 가리킨다. 엄밀하게는 자연계에서 드물게 존재하는 금속 원소를 담고 있는 흙을 지칭한다. 이 때문에 영어권 매체에서도 ‘rare earths’라고 표현한다. 학술적 측면에서는 화학 원소번호 57~71번에 속하는 란탄족 원소 15개에 스칸듐·이트륨을 더한 17개 원소를 뜻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보다 많은 30여 개가 희토류로 불리고 있다.
이들 원소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건조한 공기에서도 상태에 변화가 없으며 열을 잘 전달하는 특징이 있다. 또 소량으로도 기기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어 관련 업계에서는 ‘첨단산업의 비타민’ ‘녹색산업의 필수품’이라 불린다. 희토류는 액정표시장치(LCD), 발광다이오드(LED),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전자제품과 미사일 제어장치, 전투기 등 군용 물자에 두루 쓰이고 있다.
21세기 들어 희토류는 산업적 측면에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엔진에 사용되는 영구자석에는 희토류 원소가 적게는 1㎏에서 최대 12㎏까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통신 기기에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형광체와 광섬유 등에도 필수적인 물질이다.
대표적인 희토류로는 란타넘이 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인 니켈수소 합금전지의 주원료로 사용된다. 란타넘은 루테튬과 더불어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촉매로 사용되기도 한다.
F-35 전투기와 토마호크 미사일 등 군사 무기를 제조하는 데 필수적인 영구자석은 프라세오디뮴, 네오디뮴, 사마륨, 터븀, 디스프로슘, 홀뮴 등을 필요로 한다. 희토류 중 유일하게 방사능을 띠는 프로메튬은 원자력잠수함의 에너지원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희토류는 수요와 중국의 생산량에 따라 가격이 널뛰기도 한다. 세륨은 중국이 가격을 통제하자 t당 가격이 2009년 8월 2950달러에서 2010년 9월 2만50달러, 2011년 11월 5만1950달러로 폭등한 바 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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