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질병으로 분류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거세다.
지난 5월 25일(현지시간) WHO는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가 포함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WHO 회원국인 한국도 2026년부터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공식 관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방송되는 아리랑TV의 신개념 뉴스 토론 <포린 코레스폰던츠(Foreign Correspondents)> 에서는 외신 기자들과 함께 WHO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결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이번 WHO의 결정에 여론은 물론, 게임업계와 의료계, 그리고 정부부처들까지 찬반 논쟁에 휩싸였다. 외신기자들의 반응도 조금씩 엇갈렸다. 일본 NNA의 사카베 테츠오(Sakabe Tetsuo) 기자는 “게임중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키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WHO의 결정에 동의한다”고 밝히면서 “일본에서는 93만 명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가진단을 통해서 게임중독자인 사실이 드러났다. 5년 전과 비교하면 2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하지만 게임 산업에 미칠 타격은 많이 우려되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독일 도이치벨레(Deutsche Welle)의 파비안 크레츠머(Fabian Kretschmer) 기자는 “과잉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면서, “WHO의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에는 무려 5만4천여 가지의 질병이 등록되어 있다. 게임중독은 물론이고 미래에는 SNS 중독도 포함될 것으로 전망하는데, 게임중독은 우울증과 같이 다른 정신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습관질병’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다른 의견을 내놨다.
블룸버그BNA(Bloomberg BNA)의 켈리 카슬리스(Kelly Kasulis) 기자는 WHO의 결정에 찬성하는 뜻을 보이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이번 결정이 여론, 특히 부모님 세대에서 과잉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아주 극소수에 해당되는 질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자녀들의 게임기를 빼앗아가는 상황 같은 것이 우려된다. 실제로 WHO가 명시한 (게임중독) 기준은 1페이지 분량 밖에 안돼서 더 구체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WHO가 게임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면서 국내 게임업계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게임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심화되고, 나아가 게임 자체가 ‘악’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한국은 ‘게임강국’으로 통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해 12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게임 산업 규모는 중국, 미국, 일본 세계 4위에 랭크됐다. 또한 영화, 음악, 출판 등이 포함된 2018년 콘텐츠 전체 수출액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62.1%인 것으로 조사됐다.
켈리 카슬리스(Kelly Kasulis) 기자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WHO의 규정 하나 때문에 게임 산업에 그렇게 많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산업이 약간 위축되기는 했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초기에 발생하는 패닉 반응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게임제품을 구매할 때 과연 WHO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소비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파비안 크레츠머(Fabian Kretschmer) 기자는 “한국의 게임 산업은 이미 어려운 위치에 있다. 중국과 미국 같은 경쟁국에서 개발비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거대한 시장 가운데서 한국 게임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경쟁력을 잘 살리는 것이 관건이다. 한 때 게임시장의 선구자였던 한국이 WHO의 규정으로 인해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면 매우 유감스러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카베 테츠오(Sakabe Tetsuo) 기자는 “한 주류회사에서 고객을 위해 중독을 피하고 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음주수업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게임회사들도 이런 비슷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게임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면 좋을 것 같다. 오히려 게임을 통해서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 대신에 소통과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를 전수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WHO는 지속성과 빈도, 통제가능성에 초점을 뒀고 일상생활에서 게임을 통제하지 못한 채 12개월 이상 게임을 지속하는 것 등으로 판단한다고 언급했다.
30년 만에 개정된 이번 분류 기준안은 194개 WHO 회원국에서 오는 2022년부터 적용된다.
국내 게임업계는 WHO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해 규제를 추가하면 한국 게임산업의 손실금액이 2025년 최대 5조2004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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