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신영 기자 ] “금융당국에서 전직 관료 A씨를 차기 기업은행장으로 낙점했다던데….”
12일 만난 한 대형은행의 임원은 불쑥 기업은행장 얘기를 꺼냈다. 자신의 정보를 확인하려는 눈치였다. “기업은행이 9년 만에 다시 관료 출신 행장을 맞게 되는 거 맞죠?”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아직 임기가 6개월 남았다. 그럼에도 금융업계에선 벌써부터 차기 은행장 하마평이 나돈다. A씨를 포함해 주로 전직 금융당국 관료 출신들이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이 같은 소문은 전·현직 관료 사이에도 퍼져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낙하산이 꼭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했다. “낙하산 행장이 선임되면 해당 은행의 행장 후보인 임원들은 반갑지 않겠지만 일반 직원이야 큰 상관 있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낙하산 긍정론’도 적지 않다. 규제당국에 은행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건의할 수 있다는 논리다. 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은 정부 정책에 맞춰 금융 지원을 해야 한다. 은행 내부인사보다 관료 출신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의 배경이다.
금융업계에서도 낙하산 최고경영자(CEO)의 장점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낙하산 CEO를 반기진 않는다. 그동안의 경험 때문이다. 도움이 되는 ‘낙하산’은 많이 보지 못했다. 오히려 분란을 일으킨 경우도 적지 않았다. KB금융그룹과 옛 우리금융그룹은 각기 다른 연줄로 자리에 오른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주도권 다툼을 하느라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사태 이후엔 낙하산으로 인한 민(民)·관(官) 유착관계를 끊기 위해 정부가 먼저 각 금융협회에서 관료 출신 자리로 정해져 있던 부회장 자리를 없애기도 했다. 작년 1월엔 하나금융지주 회장 인선과 관련해 청와대가 금융권 인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적도 있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빠진 자리를 금융당국 공무원들이 채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차라리 청와대 ‘실세’가 낙하산으로 오면 은행도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데 관료 출신은 이도 저도 아니다”며 “내부 출신이 행장으로 승진하는 관례를 어렵게 만들었는데 다시 과거로 역행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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