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도 법안 추진 보류 '촉구'
美도 반대…미·중 갈등 뇌관으로
[ 강동균 기자 ]
홍콩 의회인 입법회가 12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시작할 예정이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2차 심의를 전격 연기했다. 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예고되고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앤드루 렁 홍콩 입법회 의장이 이날 구체적 일정을 제시하지 않은 채 법안 심의 연기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애드미럴티의 홍콩 입법회 앞 타마르공원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법안 심의를 저지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심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참여하는 시민 규모는 계속 늘어났다. 외신들은 지난 9일 103만 명에 이어 이날에도 100만 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홍콩 경찰은 5000여 명을 입법회 주변에 배치하고 주요 도로를 봉쇄했다. SCMP는 “홍콩 경찰이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한다’는 경고문도 내걸었다”고 전했다.
이날 집결한 시위대는 각계각층을 망라했다. 교사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총파업에 동참해 법안 저지 시위에 적극 나설 것을 독려했다. 홍콩 내 400여 개 기업과 점포 등도 이날 동맹파업을 벌이며 저지 시위에 나섰다.
캐세이패시픽 등 홍콩 항공사 승무원들도 시위에 동참했으며 시내버스 운전사 노조는 서행 운전 등으로 시위를 지지했다. 홍콩중문대와 홍콩과학기술대, 홍콩이공대 등 7개 대학 학생회는 동맹 휴업을 벌였다. 고등학생들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일정을 공유하며 시위에 동참했다. 천주교 홍콩교구 등 종교계도 홍콩 정부가 법안 추진을 보류하고 시민들과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거리로 뛰쳐나온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법 철회를 외치고 있다. 이 법안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홍콩은 영국, 미국 등 20개국과 인도 조약을 맺었지만 중국과는 아직 조약을 맺지 않았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은 2047년까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에 따라 정치·입법·사법체제의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반(反)중 인사나 인권운동가 등을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악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도 이 법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에 중국 정부는 내정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은 전날 자국 시민들에게 대규모 시위를 피하고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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