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전자·하이닉스 회계법인 '강제 교체'

입력 2019-06-12 17:44  

내년 '주기적 감사인 지정' 대상 보니…

KB금융 등 100大 상장사 중 23곳 교체 대상
회계기준 판단 둘러싼 분쟁 속출 등 '대란' 우려



[ 하수정/김진성 기자 ]
마켓인사이트 6월 12일 오후 3시15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100대 상장사 중 23곳의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이 강
제 교체된다. 신(新)외부감사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의 핵심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데 따른 것이다. 외부감사인이 대거 바뀌면 회계기준 판단에 대한 분쟁이 급증하고 재무제표 정정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2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당국이 2020년 주기적 감사인 지정 대상을 잠정적으로 추려본 결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중공업 등이 해당하는 것으로 나왔다. 금융사 중에선 삼성생명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이 포함됐다. 카카오와 엔씨소프트도 명단에 올랐다.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전자 SK텔레콤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는 기존 감사계약 기간이 남아 있거나 감리에서 위반 사항이 적발되지 않은 등의 사유로 제외됐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6년간 자율 선임하면 이후 3년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강제 지정하는 제도다. 내년부터 매년 220개 기업에 단계적으로 지정된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자산총액, 감사계약 기간, 예외 사유 등을 고려해 지정 대상을 선별한 뒤 10월 사전 통지하고 11월에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큰 회계감사 대란이 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산총액 상위 기업이 줄줄이 감사인을 교체한 뒤 재무제표 정정이 잇따르거나,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아 제2의 아시아나항공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삼성 외부감사 40년 만에 교체…기업 "회계 잣대 달라지나" 전전긍긍

내년 기업 회계감사 현장에 대혼란이 예고됐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시행 첫해를 맞아 대기업을 중심으로 회계법인이 대거 교체되기 때문이다. 원칙 중심의 국제회계기준(IFRS) 환경에선 회계처리 기준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를 가능성이 있어 기업과 회계법인, 기존 감사인과 새 감사인 간 파열음이 속출할 전망이다. 해외 사업장이 많은 기업이거나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금융업, 수주산업 등은 감사인 교체에 따른 회계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감사인 지정제로 회계 처리를 둘러싼 분쟁과 함께 재무제표 정정 급증, 감사비용 증가 등 부작용이 예상되는데 금융감독당국의 대책이 미흡한 점도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내년부터 상장사 감사인 대거 교체

삼성전자는 2020년 재무제표부터 감독당국이 지정한 새로운 외부감사인에게 감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첫 적용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새 감사인은 회계사 수와 제재 경력 등을 고려한 산식에 따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한다.

삼성전자는 1970년대부터 40년 넘게 삼일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맡겨왔다.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감사인이 교체되지만 삼성전자뿐 아니라 회계업계도 준비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주기적 지정제로 순번을 따졌을 때 EY한영이 유력하지만 벌점 등을 감안하면 삼정KPMG나 딜로이트안진에 기회가 갈 수 있다는 등 삼성전자 지정 감사를 놓고 예측만 난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기업들과 회계법인 모두 한 치 앞을 몰라 주기적 지정제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못 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당국은 내부적으로 대상 기업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2014년부터 6년간 외부감사인을 자유선임해 왔고 지정 면제나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업체 중 자산총액이 큰 순서대로 220곳을 후보로 올린 뒤 오는 11월까지 명단을 확정할 예정이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세계 73개국에 200개가 넘는 사업장이 있는 삼성전자의 외부감사인을 강제 교체하면서 고작 2, 3개월 앞두고 통지하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첫 후보군엔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23곳이 올라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 현대중공업, 에쓰오일, 롯데케미칼, CJ제일제당, CJ ENM,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이 포함됐다. 4대 금융회사 중에선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교체 대상이다. 신한금융은 2002년 후 18년 만에, KB금융은 2008년 지주사 출범 후 첫 교체다.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는 제외됐다. 보험사 중에선 삼성생명, 현대해상 등이 주기적 지정제 대상에 들어갔다.

포스코와 LG전자는 과거 6년 이내 감리를 받았지만 회계기준 위반이 발견되지 않아 감사인 지정을 면제받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부작용 뻔한데…금융당국 대책 미흡”

기업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새로운 감사인이 오랫동안 관행처럼 해오던 기존 회계처리를 문제 삼거나 재무제표 정정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한정’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가 매물 신세가 된 아시아나항공 사례로 기업들의 공포감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감사법인은 삼일회계법인 그대로였지만 담당 회계사가 바뀌면서 기존 회계처리를 문제 삼아 회사 측과 분쟁이 촉발됐다는 후문이다. 대형 상장사의 회계담당 임원은 “내년에 정부로부터 다른 회계법인을 지정받을 경우 회사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감사가 한층 깐깐해질 것 같아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당국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부작용을 완화할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계 분쟁이 급증할 것에 대비해 한국공인회계사회를 중심으로 한 분쟁조정위원회를 활성화할 계획이지만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없어 쏟아지는 분쟁이 해결될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회계 분쟁을 조율하는 공적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기업과 투자자가 감사인 교체 여부를 예측할 수 있도록 지정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상장사를 비롯한 외부감사 대상 기업이 6년간 감사 담당 회계법인을 자유롭게 선임하면 그 이후 3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는 제도. 감사인을 주기적으로 교체해 기업과 감사인의 교착관계를 끊어 부실감사를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수정/김진성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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