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별 보좌관의 강연은 꽤 매력적이다. 북핵 해법에 관한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청중 대부분이 어느샌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선(先)포괄적 합의, 후(後)단계적 해결’ 이라는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의 큰 틀을 제공한 인물이 문 특보다. 그는 미·북 양쪽의 주장이 비현실적임을 논리적으로 설파해왔다.
미국이 내세우는 단 한번의 ‘빅딜’은 물론이고, 비핵화 로드맵도 없이 당장 영변핵시설 폐기와 민생제재 해제를 맞교환하자는 북한의 주장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문 특보의 생각이다. 그는 외교안보 분야의 석학이자, 어지간한 고위 외교관들도 따라가지 못할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대통령의 특보라는 후광 효과까지 더해 미·중·일 등 해외에서 가장 많이 초청받는 인사다.
합리와 현실에 근거하던 평소 문 특보의 강연 스타일을 감안하면, 12일 그의 강연은 ‘관제·어용’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는 외교부 주최(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 공동)로 열린 ‘평화를 창출하는 한미동맹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한·미 동맹의 현재를 진단하는 그의 논리는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였다. “교수 자격으로 말씀드린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문 특보는 “한국에서 보수적인 분들이 한·미 동맹에 문제가 크다. 균열이 있고,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렵다고 비판하지만 이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근거로 ‘세가지 지표’를 들었다. 우선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1953년 10월에 서명해 이듬해인 1954년 11월18일에 발효된 그 조약 말이다. 다음으로 거론한 지표는 한·미연합사령부였다. 1978년에 창설된 연합사가 계속 존재하므로 한·미 동맹은 굳건하다는 논리다. 문 특보는 “만약 문 정부 임기 내에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환수된다고 하더라도 한·미는 미래지향적인 연합지휘구조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으므로 (미래에도) 한·미 동맹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지표는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뜨악했다. 문 특보는 “미국이 갖고 있는 해외 군사기지가 평택 주한미군 기지”라며 “주민들의 상당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서 만든 것이고 이처럼 근사한 기지를 한국의 세금으로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그만큼 한·미 동맹이 견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를 인정하고 고마워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미 동맹의 균열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와중에 외교부가 주최한 행사에 초청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논리가 매우 빈약해 보였다. ‘한국의 보수’들이 우려하는 바를 애써 외면하려는 듯한 인상까지 들게했다. 한·미동맹을 우려하는 이들도 당장 양국이 쪼개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2월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 때 북과의 협상전략을 끝까지 우리 정부에 함구한 백악관의 정서를 우려하는 것이다. 외교가에선 미국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기피 1순위’로 본다는 말이 파다하다. 오죽했으면 비외교관 출신으로 통상 전문 변호사인 김현종 안보실 제2차장이 미국과 소통하는 창구로 활동하겠는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한미동맹도 그렇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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