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of the week] 달러가 왕좌에서 내려오는 날

입력 2019-06-13 17:01   수정 2019-06-13 17:02

'脫달러' 부른 경제 제재
美 원유 자급률 상승도 '복병'
美 나랏빚 급증에 달러 가치↓

바이 사힐 마흐타니 < 인베스텍애셋매니지먼트 전략가 >



[ 서욱진 기자 ] 미국 달러가 세계 최고 기축 통화의 지위를 잃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한다. “달러화에서 벗어나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너무 안이하다.


지난 18개월 동안 외환시장은 달러화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지난해 상하이에서 선보인 중국의 ‘페트로위안(Petroyuan)’ 원유 선물은 현재 거래량이 브렌트와 서부텍사스원유를 바짝 뒤쫓을 만큼 성장했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1971년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미국을 금본위제에서 제외시킨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금을 지난해 사들였다. 또 중국은 최근 5개월 연속 외환보유액에 금을 추가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올해 초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란에 대한 지급을 허용하는 새로운 결제처리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인도주의적 지원에만 허용하는 것으로 조용히 시작했지만 다른 상품과 서비스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결국 잠재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결제 시스템과 경쟁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제재에 달러가 많이 활용된 것이 ‘탈(脫)달러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원인이다. 유럽에서 2014년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에 부과된 89억달러의 벌금을 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러시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중국 위안화, 유로화, 일본 엔화로 바꾸고 있는 것도 이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서양 쪽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유럽 기업들이 유로 대신 달러로 유럽산 비행기를 구입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 급증도 통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5년까지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이미 2010년 이후 석유 수입량을 25%까지 줄였고, 수입량은 앞으로도 계속 감소할 것이다.

석유 자급률이 높아지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것이지만 달러의 위상에는 생각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이 국제 원유를 덜 사는 반면 중국인들이 구매를 증가시킨다면 석유 수출업자들이 달러화 이외의 통화, 즉 위안화 등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의 석유회사들은 이미 위안화를 받기 시작했다. 사우디까지 이 대열에 동참한다면 그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중국 인구통계의 구조적 변화도 한몫한다. 중국의 근로 연령 인구는 2016년 정점을 찍었고 앞으로 계속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가계 저축이 줄어들어 중국의 경상수지에 일관된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중국은 외화 부채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국인들이 지금보다 더 손쉽게 위안화로 중국 자산을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중국이 글로벌 채권과 주식 지수에 중국 자산을 편입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위안화 표시 채권은 지난 4월 블룸버그 바클레이즈 글로벌 지수에 편입됐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는 감세와 더 많은 재정 지출을 통한 예산 적자를 가져올 것이다. 의회예산국은 2048년까지 미 연방정부의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52%에 달해 현재 78%에 비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재정과 경상수지가 좋지 않다는 것은 곧이어 달러 약세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지표들은 향후 몇 년 동안 달러 가치가 두 자릿수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큰 환율 변동은 드물게 또 길고 느리게 일어난다. 영국의 파운드화는 1970년대 초까지도 완만한 강세를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 각국 통화 비축량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후 10년 뒤에는 20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1930년대에 영국이나 이탈리아와 같이 금본위제를 벗어난 나라들은 3~5년 사이에 통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심지어 달러도 1971~1978년에 비해 거의 절반의 가치를 잃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외화는 너무 비싸 당시 옛 서독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은 서독인들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했다.

많은 사람이 “달러가 휴지가 될 것이다”는 말은 이미 이전에도 많이 들어봤다고 코웃음을 칠 것이다. 사실이다. 1970년대부터 이미 달러화가 가진 최고 통화 자리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달러는 모든 곳에서 그대로 많이 쓰인다. 달러 가치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다극화 세계의 출현은 다가올 시장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앞서 언급한 많은 징조가 있다. 미국 달러가 마침내 왕좌에서 내려올지도 모른다.

원제: The Dollar May Be Knocked off Its Pedestal

정리=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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