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투쟁에서 살아남기

입력 2019-06-13 18:17  

박종우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jwpark@seoulbar.or.kr >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다. 강대국의 흥망성쇠와 마찬가지로 현실 정치판에서도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나라의 역사가 바뀐다. 작게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권력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한나라를 건국한 한고조 유방은 농부 출신의 건달 생활을 하던 인물이었다. 군을 통솔하는 능력이나 병법에도 뛰어나지 않았다. 반면 초패왕 항우는 귀족 출신에 무술과 병법에 뛰어났던 인물이다. 항우는 뛰어난 참모였던 범증의 도움을 받아 여러 번 유방을 사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다혈질에 의심이 많았던 항우는 범증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범증을 의심해 죽음으로 내몰았다.

유방은 항우에 비해 개인적인 역량은 부족했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인재들을 곁에 두며 그들의 의견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수용했다. 유방의 여러 인재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장량과 한신이다.

장량은 유방이 선택의 기로에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언했다. 무엇보다도 유방이 민심을 얻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진나라 황제의 항복을 받고 옥새까지 넘겨받은 유방은 진나라 황궁의 아름다움과 진귀한 보물을 보자 황궁에 머무르려 했다. 그러자 장량은 유방에게 “진나라가 망한 이유는 폭정과 사치 때문인데 초심을 잃고 진의 모습을 답습하려 한다면 우리도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고 했다. 장량의 조언을 들은 유방은 황궁과 창고를 폐쇄하고 약탈을 방지해 민심을 안정시켰다.

원래 항우의 무장이었던 한신은 장량을 만나 유방의 휘하에 들어왔다. 위, 조, 제 등을 격파하면서 한나라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유방의 견제를 받은 끝에 죽임을 당했다. ‘토사구팽’ 고사가 그래서 나왔다.

장량은 다른 공신과 달리 토사구팽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장량은 권력을 잡은 이후에도 파벌을 만들지 않았다. 누구와도 적을 만들지 않았으며 자신이 물러날 시점을 알았다. 반면 한신은 유방의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하면서 그의 권위에 도전했다.

장량과 한신은 하나의 예다. 권력투쟁에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옮고 그름도 없다. 모두 그들의 운명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 했다. 확실한 건 자신의 분수를 알고 언행을 조심하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더 아프다는 것을 알고 늘 경계하는 것이 권력투쟁에서도 살아남는 첫 번째 원칙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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