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기초한 평화' 교훈 되새겨야
정상돈 < 前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구상을 재천명했다. 주제는 ‘국민을 위한 평화’였다. 문 대통령은 “평화란 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했다. 노르웨이 평화학자 요한 갈퉁의 ‘적극적 평화’ 이론도 언급했다. 남북한 주민들이 분단으로 인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교류와 협력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연설을 들으면서 우리가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 민족은 힘이 없어 수없는 외침을 당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힘에 의한 평화를 과소평가하는 듯한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으로 남북한 주민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을 체제 위협 요인으로 본다. 따라서 북한을 상대로 한 한국의 평화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이것도 문 대통령의 평화 철학과 정책이 상대와 상황에 정확하게 맞춰진 것인지를 묻게 만드는 대목이다.
지난달 3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을 136만t으로 추정하고 국제사회가 대북지원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북한은 한 해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투자하는 돈의 7분의 1만 사용해도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겐 핵과 미사일 개발이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훨씬 중요한 국가적 사업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가 목표는 국민의 생존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의 생존 보장이다. 정상국가라면 이럴 수 없다. 분단으로 인한 구조적 폭력의 핵심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수령 유일지배 체제다. 상대를 제대로 보고 평화를 얘기하자는 의미다.
1970년대 유럽에선 ‘데탕트’, 즉 긴장완화정책이 추진됐다. 1975년엔 헬싱키 선언과 함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출범했다. 그러나 이후 소련이 동유럽에 중거리 핵미사일 SS-20을 배치하면서 전략적 균형이 무너지게 됐다. 미국은 당시 소련의 장거리 핵미사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에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설득해 197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이중결정’을 이끌어냈다. 동유럽에서 소련의 SS-20을 철수시키는 협상을 하되, 실패하면 서유럽에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해서 전략적 균형을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독일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 규모의 반(反)정부 평화운동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슈미트 총리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NATO 동맹은 더욱 강화했다. 평화는 힘의 균형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화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접근법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6·25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군사도발을 한 쪽은 북한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한·미 동맹 덕택이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 대처하는 대안도 현재로선 한·미 동맹밖에 없다. 그런데 ‘도그마’가 된 한국의 평화정책으로 한·미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이 유럽의 평화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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