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시위 벌이던 30대 男 투신…시위 참가자 크게 늘어
시민들, 中 입김 더 세지면 자유민주주의 빼앗길까 공포
[ 강동균 기자 ] 16일 오전 홍콩 빅토리아공원.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오후 2시30분이 되자 수만 명으로 불었다. 이들은 “중국 송환법(범죄인 인도법 개정법안)을 폐기하라” “캐리 람(홍콩 행정장관)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부 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저녁이 다가오면서 시위대는 엄청나게 불어나 100만 명을 넘어섰다. 홍콩 빈과일보는 이날 시위에 참가한 사람을 144만 명으로 추산했다. 지난 9일의 103만 명을 크게 앞선 수치다. 전날 송환법에 반대하며 고공시위를 벌이던 30대 남성이 투신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시위 참가자가 크게 늘었다.
지난 9일 시위 이후 1주일 만에 다시 열린 대규모 집회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수㎞ 거리의 도로를 가득 메워 홍콩 도심이 ‘검은 바다’로 변했다고 묘사했다. 1주일 전 시위 때 참가자들은 흰옷을 입었지만, 이날 참가자들은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검은 옷을 주로 입고 나왔다. SCMP는 ‘상복(喪服) 시위’라고 표현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홍콩 시민 저항의 상징물인 ‘우산’을 펼쳐 들기도 했다. 이번 시위에 직접적 계기는 송환법이지만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의 영향력이 세지고 있어 자유와 민주주의가 훼손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전날 친중(親中) 성향의 홍콩 정부가 송환법 처리를 무기 연기한다고 발표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이를 믿지 않고 거리로 나왔다. 홍콩의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15일 오후 3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송환법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람 장관은 “그동안 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많은 사람을 실망시킨 것을 후회한다”며 “사회 각계와 소통을 시작해 더 많이 설명하고 다른 의견도 듣겠다”고 말했다. 홍콩 의회인 입법회는 당초 오는 20일 표결을 거쳐 송환법을 시행할 예정이었다.
홍콩 정부가 연기를 결정한 데는 중국 공산당의 입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선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홍콩과 인접한 선전에 직접 내려와 대책 회의를 했으며, 람 장관에게 법안 연기를 지시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홍콩에서 시위가 계속되면 신장위구르, 티베트 등 중국의 이른바 ‘약한 고리’에서 반중(反中) 목소리가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법안 개정은 연기됐지만 시민들은 예고된 ‘검은 옷 시위’를 강행했다. 시위대는 “법 개정 중단은 ‘적의 공격을 늦추는 계략(緩兵之計·완병지계)’에 불과하다”며 송환법의 완전 철회와 경찰의 과잉 진압 사과, 람 장관 사퇴 등을 요구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악법 폐지’, ‘학생과 시민들을 사살하지 말라’, ‘우리를 죽이지 말라’ 등의 내용이 적힌 영어·중국어 팻말과 플래카드를 손에 들었다. 시위를 계획한 시민인권전선은 “칼은 여전히 홍콩의 심장 근처를 겨누고 있다”며 “람 장관은 단지 칼을 부드럽게 밀어 넣고 있을 뿐이며 3~4주, 혹은 한 달 뒤에 그는 다시 칼을 꺼내 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람 장관은 이날 밤 성명을 내고 “정부 업무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홍콩 사회에 커다란 모순과 분쟁이 나타나게 하고, 많은 시민을 실망시킨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시위대가 요구한 송환법 폐기와 자신의 사퇴 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개정안 추진 보류에 대해 홍콩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홍콩 내정에 누구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송환법에 우려를 밝히고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매년 평가하겠다고 하자 이에 반발하는 모습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내놓은 담화문에서 “국가의 주권 및 안보,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보호하겠다는 중국의 결의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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