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갈등 韓에 '뼈있는 한마디'
혁신엔 정부 조율·소통도 중요
철저한 현지화로 우버 꺾어
[ 김남영 기자 ]
“그랩도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택시회사 하나하나, 택시기사 한 명씩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또 설득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호출서비스 업체인 그랩의 밍 마 사장은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혁신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기존 택시업계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했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마 사장은 “새로운 서비스가 기존 이해당사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설득하며 신뢰를 얻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차량공유와 전자상거래 분야 기업에 대한 투자를 총괄하다 2016년 10월 그랩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랩은 2012년 설립됐다. 미국 우버를 꺾고 동남아 차량 호출서비스 시장 75%를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8개국에서 영업 중이다. 그랩의 차량 호출 앱(응용프로그램)은 1억5000만 건이 넘는 누적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랩 역시 초기에는 택시업계와 갈등을 겪었다. 기존 택시업계와 타다 등 새 모빌리티(이동수단) 서비스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이 눈여겨볼 만한 사례다.
“택시기사와 승객 모두를 위한 혁신”
그랩은 말레이시아에서 ‘마이택시(MyTeksi)’란 택시호출 앱으로 출발했다. 엉망이라고 판단한 동남아의 택시, 교통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동참할 의지가 없는 택시기사들에게 낯선 앱을 이해시키고 참여를 유도하기란 쉽지 않았다. 마 사장은 “시간을 들여 이해관계가 걸린 택시회사와 기사들에게 서비스를 설명했다”며 “그 결과 끈끈한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고 설명했다.
말에만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마 사장은 “그랩의 예약 시스템과 수요를 기반으로 한 탄력요금제를 통해 기사들이 손님 없이 길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시스템 덕분에 기사와 승객이 연결되는 횟수가 30%가량 증가했다”며 “그랩 호출을 받는 택시기사들은 전체 택시기사의 평균치보다 32% 정도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랩은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복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그는 “사고 시 기사에게 보험 비용을 지급해주는가 하면, 운전자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는 ‘그랩파이낸셜’과 운전자 가족에게 주는 장학금 제도까지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싱가포르의 모든 택시회사는 그랩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여기에다 동남아 정부의 도움으로 그랩이 국경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마 사장은 소개했다. 그중 싱가포르 정부의 지원이 가장 컸다고 전했다.
그는 “싱가포르 정부와 규제기관들이 아주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정부와 주요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지속적인 소통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모빌리티를 혁신하려면 업계 당사자뿐만 아니라 정부와의 조율과 소통 능력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철저한 현지화로 우버를 꺾어
그랩은 지난해 3월 우버의 동남아사업을 인수해 현지 최대 차량 호출 플랫폼으로 우뚝 섰다. 사업성과 잠재력을 인정받아 지금까지 도요타자동차, 오펜하이머펀드, 현대자동차, 부킹홀딩스, 마이크로소프트(MS), 핑안캐피털 등으로부터 87억달러(약 10조3138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받았다.
한국에선 SK, 네이버, 미래에셋 등도 그랩에 투자했다. 국내 새 모빌리티 기업이 정부 규제, 기존 업계의 반발로 좌초 위기에 놓이자 그랩과 같이 가능성 높은 해외 모빌리티 기업에 투자한 것이다.
그랩은 물류·금융·콘텐츠·헬스케어 등의 다른 분야에 진출하면서 새 모빌리티 기업이 어디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동남아 온라인 동영상업체인 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중국 업체인 핑안굿닥터, 종안인터내셔널과는 각각 디지털 헬스케어, 보험 서비스를 선보였다. 호텔 예약업체인 부킹닷컴, 아고다 등의 모회사 부킹홀딩스와는 호텔 예약서비스도 내놓는다.
그랩이 동남아에서 빠르게 성장한 가장 큰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었다.
인구밀도가 높은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에선 혼잡한 도로상황을 고려한 ‘그랩바이크’를, 캄보디아나 미얀마에서는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해 수레를 이은 형태의 삼륜 차량)을 활용한 ‘그랩툭툭’ 등을 내놨다.
마 사장은 한국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에 맞는 솔루션을 개발하려면 현지 파트너와 관계를 맺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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