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프로젝트' 6개월 만에 좌초 우려
3년간 일자리 3000개·1兆 경제효과 '물류 新사업' 차질
[ 서민준/오상헌/박종필 기자 ]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국내 물류회사들이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물류센터(GDC) 프로젝트’가 사업 시작 6개월 만에 좌초 위기에 빠졌다. 해외로 배송되기 전 인천공항 물류창고에 잠시 보관하는 농축산품 등에 대해서도 농림축산식품부가 검역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해외 전자상거래업체들은 “유통업체가 수많은 상품의 검역증명서를 일일이 받는 건 불가능하다”며 한국 시장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17일 관계부처와 물류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미국 전자상거래업체인 아이허브와 계약을 맺고 올 1월부터 아시아 소비자가 주문한 상품의 배송을 맡았지만 전체 주문량의 20%에 달하는 농축산품을 검역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반송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송 차질이 생기자 아이허브는 아시아 물류허브를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직구(직접구매) 쇼핑몰인 오플닷컴과 손잡은 롯데 역시 같은 문제로 사업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검역 규제에 배송 업무 20% 차질”
관세청과 인천공항,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등 국내 3대 물류기업은 지난해 4월 GDC 사업을 공식화하면서 “올해부터 2021년까지 신규 일자리 3000개와 1조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이란 청사진을 내놨다. 가장 먼저 GDC 사업을 시작한 건 CJ대한통운이다. 인천공항에 2만9000㎡ 규모 물류 창고를 세우고 글로벌 전자상거래업체 아이허브와 배송 계약을 맺었다. 사업은 올 1월부터 본격화했다.
하지만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GDC에서 취급하는 물품도 일반 화물과 똑같이 검역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검역당국의 규제 때문이다. 검역당국은 CJ대한통운이 다루는 아이허브 제품 가운데 말린 과일·농산물, 씨앗, 육포 등 전체 2~3% 정도의 물품에 대해 현장검역뿐 아니라 미국의 검역증명서까지 요구하고 있다. 검역대상 상품과 일반 상품을 함께 주문하는 비중은 20%에 달한다. 검역대상 상품에 대한 검역증명서가 없으면 함께 구입한 일반 상품도 국내에 들여올 수 없다. 결국 전체 주문량의 20%를 제대로 배송하지 못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허브가 수많은 상품에 대해 검역증명서를 받으려면 각 제품을 생산한 제조업체를 찾아가 성분 분석 등 관련 서류를 받아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비용도 너무 많이 든다”고 했다.
잇따른 배송 차질에 아이허브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GDC를 싱가포르, 홍콩 등 다른 나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플닷컴과 계약을 맺은 롯데글로벌로지스 역시 정상적인 사업을 못하고 있다.
정부, 뒤늦게 제도 개선 나섰지만…
업계는 “괜찮은 사업 기회와 일자리를 해외로 날려보낸다”며 규제 완화를 촉구하고 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GDC 사업은 물품을 공항 창고에 잠시 보관했다가 다시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내보내기 때문에 검역을 엄격하게 하지 않아도 전염병이나 해충 등이 국내에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국내 소비자가 해외 직구로 물품을 받을 때는 검역증명서 제출 의무가 대부분 면제되기 때문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물품에 대해선 검역증명서 제출을 면제해주면서 창고에 잠시 보관하는 물품에는 검역증명서를 내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3월 업계 요청에 따라 GDC 취급 물품은 국내에 유통되지 않고 국내 소비자가 해외 직구로 구입할 때 검역증명서 제출을 면제받는다는 점 등을 고려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검역정책 주관부처인 농식품부가 “검역망이 뚫리면 피해는 말할 수 없이 커진다. 규제 완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서민준/오상헌/박종필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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