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 의회 한국 관련 결의안의 이면

입력 2019-06-17 17:58  

김현석 뉴욕 특파원


[ 김현석 기자 ] 지난 4월 10일 미국 연방의회 상·하원에서 ‘100년 전 임시정부 수립이 한국의 성공·번영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발의됐다. 뉴욕한인회 등이 톰 수오지 하원의원(민주당·뉴욕) 등에게 요구해 제출된 결의안이었다.

당시 워싱턴DC를 1박3일 일정으로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미 연방의회에서는 때마침 임시정부를 한국 건국의 시초로 공식 인정하는 초당적 결의안을 제출했다”고 글을 올렸다. 하지만 큰 관심을 받은 이 결의안은 통과되지 못한 채 묻혔다.

올해 미 의회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3·1운동 100주년 관련 결의안이 여러 건 제출됐다. 각 지역 한인회의 압력으로 지역 정치인들이 낸 것이다. 그렇지만 본회의는 물론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한 건도 없다.

일부 교민, 서울 정치 눈치보기

그러니 좀 더 쉬운 지방자치단체 의회를 공략한다. 지난 1월 뉴욕주의회에서는 100주년을 맞은 3·1운동과 유관순 열사(1902~1920)를 기리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뉴욕시에서 차로 3시간 반 거리의 알바니 주의회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한국 국회의원 5명이 직접 방문했다.

이런 결의안은 재미 한인의 권리 신장에 도움이 될까. 사정을 잘 아는 한 한인은 “재미 한인의 현안인 불법체류 한국인의 자녀(드리머) 문제, 전문직 비자 확대 문제, 많은 동포가 종사하는 소상공업 규제 완화 및 지원 방안 등은 100년 전 얘기에 눌려 뒷전으로 밀려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결의안의 배경에 한국 정부가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 대통령은 올 1월 현충원 방명록에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이라고 적었고,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는 옷깃에 태극기 대신 3·1운동 100주년 기념 배지를 달았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 차원에서 이승만 초대 정부가 아니라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걸 강조해왔다.

정부 지원을 받는 한인회들은 대부분 정권 성향에 맞춰 뛴다. 일부 ‘야심 있는’ 한인회 회장 중에서는 결의안 채택을 앞세워 박지원 의원(민주평화당)처럼 한국 정치에 뛰어들려는 이도 있다.

외국 로비 단속 대상될 수도

무리한 결의안은 우려와 부작용을 낳는다. 지난 4월 10일 미 상원에선 한·미·일 유대와 공조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임시정부 100주년 결의안 대신 말이다. 상원 외교위원회 밥 메넨데즈 의원(민주당 간사)과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의원(공화당) 등 지한파 의원들이 한·일 관계를 우려해 낸 것이다.

메넨데즈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모두가 동북아에 큰 이익을 갖고 있는 만큼 서로 존경심을 보이며 강력한 삼두마차 체제를 유지하자는 게 결의안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최근 워싱턴DC에선 해외 정부의 영향력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 로버트 뮬러 특검 조사로 러시아 정부 등이 미국 정치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낱낱이 드러난 탓이다. 척 그리슬리 상원 재무위원장(공화당) 등은 외국인 로비스트 등록법(FARA) 개정을 추진 중이다. 법무부, 연방수사국(FBI)에 외국에 고용된 로비스트의 활동과 외국 정부가 미친 영향 등을 조사하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한인회들이 실질적인 이익이 없는 ‘쓸데없는’ 결의안을 추진하다 자칫 미 당국의 해외 로비 단속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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