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장에서 쌓인 지혜'를 정부가 무슨 근거로 허무는가

입력 2019-06-17 18:03  

주류업체가 대규모 도·소매상에 제공해 온 판매장려금이 7월부터 사실상 금지된다. 국세청이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 위임 고시’를 개정, 판매장려금을 종전의 10분의 1 수준인 1~3%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판매장려금은 주류업체가 대량 주류 구매처에 제공해온 일종의 할인혜택으로 도매상에는 10~12%, 소매상에는 20~30%의 할인율을 적용해왔다.

국세청이 주류 할인폭을 규제하고 나선 것은 할인율에 차별이 있다는 주류 유통업계의 불만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랜 주류업계의 관행에 국세청이 개입해 가격 통제를 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많은 물건을 사주는 고객에게 물건 값을 좀 더 깎아주는 것은 장사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 국세청은 이를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위적인 시장 개입은 시장 왜곡과 소비자 후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주류업계에서는 판매장려금 축소가 생맥주 등 주류 소비자 가격을 20~30% 인상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무리한 시장 개입은 이뿐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신용카드회사의 신상품 중 향후 5년간 수익성이 입증되는 ‘흑자’ 카드만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최근 밝혔다. 경쟁을 하지 말라는 얘기로, 각종 부가서비스 혜택도 이에 따라 축소될 수밖에 없다.

통신비와 대부업 최고 금리에 대한 규제, 보험료 인상 규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우지만 경쟁과 혁신을 제한해 소비자 후생이 줄어들고 일부 기득권자의 배만 더 불려주는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시장에는 오랜 시간 자생적으로 생긴 나름의 질서와 지혜가 있게 마련이다. 하이에크가 갈파한 시장 참가자들의 ‘암묵지(tacit knowledge)’를 다른 말로 하면 상(商)관행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깨뜨리면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무슨 근거와 권리로 이런 질서와 지혜를 파괴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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