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1개소법은 시대착오적
'자영업 구멍가게' 형태의
병원 운영만 하라는 얘기
[ 이지현 기자 ]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1인1개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들로부터 진료비(요양급여비용)를 환수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1인1개소법은 한 명의 의사가 두 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한 의료법 33조8항을 말한다. 이번 판결로 대법원이 네트워크 병원에서 정당한 의료행위를 했다고 인정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의료기관은 면허를 가진 의료인만 개설할 수 있다. 건보공단은 1인1개소법을 위반한 의료기관을 면허권이 없는 일반인이 운영하는 사무장병원과 같다고 보고 진료비를 환수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네트워크 병원이 의사가 개설해 운영하는 병원이기 때문에 면허 없는 사람이 개설해 운영하는 사무장병원과는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논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현재 계류 중인 1인1개소법 위헌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인1개소법은 반유디치과법으로도 불린다. 치과의사협회 등이 2012년 반값 임플란트를 내세우며 네트워크를 확장하던 유디치과 등을 견제하기 위해 법안 발의를 건의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고광욱 유디 대표를 통해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요양급여 환수처분에 관한 그동안 재판의 쟁점은 한 가지였다. ‘네트워크 병원에서 이뤄지는 의료행위가 반사회적인 해악을 끼친다고 볼 수 있는가’다. 요양급여 환수처분 대상을 규정한 법조문에 1인1개소법 위반은 포함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법률적 근거가 없는 환수처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반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경우’에 환수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어 네트워크 병원들의 진료비를 환수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네트워크 병원은 반사회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네트워크 병원은 일부 행정적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상적 의료기관의 하나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위헌심판 청구에서는 공익 훼손이 쟁점이 됐다.
“2016년 3월 헌법재판소에서 1인1개소법 위헌심판 청구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현재는 1인1개소법에 따라 의사 간 협력관계로 이뤄지는 네트워크 병원을 전면 금지한다. 합헌을 주장하는 쪽도, 위헌을 주장하는 쪽도 모두 이 법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명백히 제한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합헌을 주장하는 측은 네트워크 병원이 공익을 훼손할 수 있어 일부 의료인의 권리가 침해돼도 1인1개소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헌 측은 네트워크 병원은 공익에 도움이 되는 면이 더 많기 때문에 1인1개소법은 위헌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당시의 핵심 쟁점은 네트워크 병원이 어떻게 공익을 훼손하는지에 쏠렸다. 합헌을 주장하는 측은 과잉진료, 불법진료 등의 부정적 단어를 나열하며 네트워크 병원이 파렴치한 집단인 것처럼 묘사했지만 그 근거는 대지 못했다. 주장만 나열하지 말고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라는 헌법재판관들의 질책에 합헌을 주장하는 측은 업계 평판이라는 궁색한 변명밖에는 내놓지 못했다.”
▷대법원 판결이 헌법재판소 판단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위헌심판의 핵심 쟁점인 공익 훼손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네트워크 병원이 공익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이 간접적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공익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의료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제약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위헌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2012년 1인1개소법에 운영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뒤 논란이 시작됐다.
“1인1개소법은 1990년대에 처음 만들어졌다. 의사가 부족했던 당시에 의사 한 명이 병원을 두 개 이상 개설하거나 진료 장소를 옮겨다니면 그 공백을 무자격자가 채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 탄생했다. 이 법률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2002년 만들어졌다. 1인1개소법은 무자격자 의료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의사가 자신이 개설한 병원에서만 진료하면 서로 자본을 투자하거나 경영에 관여하는 동업관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2년 ‘의료인은 2개 이상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는 법 조항이 ‘의료인은 2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운영 및 개설할 수 없다’라고 바뀌면서 2002년 대법원 판례가 깨졌다.”
▷운영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도 많다.
“관계 집단의 이해관계를 떠나 법률 조항으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법 조항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명확성의 원칙도 들여다보고 있다. 법률은 모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인1개소법은 한 명의 의료인이 두 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운영 및 개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운영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모두 정확한 해석을 내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구체적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직 어떤 후속 조치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1인1개소법은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철학적인 법조문이 됐다. 다르게 말하면 언제든 누구나 범죄자로 엮어낼 수 있는 악법이라는 의미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 국내 치과의원들은 1인 공방과 같은 재래식 산업 형태다. 중형, 대형 치과병원이 드물다. 예전엔 치과의사의 손기술에 치과 진료를 의존했다. 최근엔 치과분야에도 첨단장비와 기술이 발전했다. 개인의 손재주가 아니라 장비와 연구가 뒷받침돼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1인 자영업 형태의 병원으로는 이런 변화를 좇아갈 수 없다. 치과계도 규모와 협력의 효율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1인1개소법은 의사는 무조건 1인 자영업 구멍가게만 하라는 법률이다. 의사가 바뀐 환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하는 정부 정책 방향과도 어긋난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궤를 같이한다. 스마트 의료기기를 활용한 원격진료가 대표적이다. 원격은 진료 장소의 분리다. 1인1개소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 의사는 자신이 개설한 병원 안에서만 진료해야 하는데 원격으로 진료한다면 수진자는 원격진료 장비가 설치된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한다. 이때 의사가 진료 장소를 벗어났는지 아닌지가 논란이 될 위험이 있다. 바이오헬스 산업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의사들이 협력관계를 이뤄야 감당할 수 있다. 이를 1인1개소법이 막고 있다. 의사들이 협력하지 못하면 결국 기업 자본이 개입해야 한다. 기업이 아닌 의사 스스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1인1개소법이 다시 개정돼야 하는 이유다.”
▷1인1개소법 시행 전후 유디치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2012년 이전 의사들 사이 동업 관계로 유디치과가 운영됐다면 2012년 이후에는 바뀐 법에 맞춰 경영지원회사 서비스를 각 병원이 구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1인1개소법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1인1개소법이 합헌이라는 판단이 나와도 유디의 운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1인1개소법 자체가 법률로서 완전하지 않아 언제든 문제를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명확하게 고쳐 달라는 것이다.”
▷경영지원회사의 도움을 받으면 어떤 점이 좋은가.
“체계화다. 의사는 병원 경영 전문가가 아니다. 선배들의 조언과 경험에 의존해 연매출 수억~수십억원 단위 작은 기업을 운영한다. 의료산업은 온갖 법률과 규제가 얽혀 있다. 병원을 경영하는 것은 다른 업종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의사는 진료라는 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경영도 해야 한다. 병원경영지원회사는 대표 원장들에게 병원 경영에 대한 모든 체계화된 노하우를 판매한다. 유디치과의 모든 원장은 경영 스트레스 없이 진료에만 전념하면서 실패없이 병원을 경영하고 있다. 이는 환자에게도 이익이 된다.”
▷유디치과와 같은 네트워크 치과가 생기면서 치과계에 변화가 있었나.
“서비스 개념이 도입됐다. 치과의사도 서비스업 종사자다. 그동안 의사들은 환자 위에 군림했다. 환자를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디치과는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여러 정책을 마련했다. 저렴한 진료비가 첫 번째다. 유디치과를 방문한 환자는 내원부터 진료 종료까지 손님 대접을 받는다. 기존 치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념이다. 이것이 서비스 경쟁력이 돼 유디치과가 크게 성장했다. 지금은 다른 모든 치과가 유디치과 시스템을 모방한다. 진료비가 크게 저렴해진 것, 그리고 치과 의사들이 환자를 고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것이 유디치과가 가져온 치과계의 큰 변화다.”
▷1인1개소법이라는 새 규제가 만들어지면서 제약은 없었나.
“유디치과가 자신들이 사는 곳에 열었으면 하는 요구가 많다. 하지만 치과의사협회와의 분쟁 해결에 집중하다 보니 의료 혜택을 못 받는 지역에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치협과의 분쟁에 들어가는 노력을 다른 방향으로 쏟았다면 지금보다 더 저렴하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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