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실패 아닌 헌법의 실패 탓
국가 권력 제한해
시민적·정치적 자유의 보루인
경제적 자유 수호하는 法治 절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자유철학아카데미 원장 >
이달 초 여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는 아침, 대형 강의실은 학생들을 비롯한 청중으로 붐볐다. ‘헌법적 현실을 평가하고 헌법학의 과제를 숙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는 문재완 한국헌법학회 회장의 개회사와 함께 ‘2019 한국헌법학자대회’의 막이 올랐다.
이 대회가 돋보였던 건 학제 융합적 성격 때문이다. 정치·경제학자로서 필자가 정치철학자와 함께 토론자로 참여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정치개혁, 사법개혁, 권력구조, 기본권 등 10개 분야에서 44개의 발제로 진행됐다.
헌법학자대회를 떠올린 건 ‘경제적 자유’에 관한 헌법적 논의가 없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이는 자유를 소홀히 한 탓이다. 그래서는 안 될 이유가 있다. 경제적 자유가 번영의 열쇠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경제적 자유는 언론·집회·표현의 자유 등 시민적·정치적 자유의 믿음직한 보루(堡壘)다. 그게 없이는 다른 자유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관용, 공동체 정신 등 도덕률도 자유의 산물이다. 경제적 자유가 다른 자유만큼 헌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번 헌법학자대회에서는 경제적 자유를 소홀히 취급했다. 권력제한과 권력구조라는 헌법의 두 가지 상이한 역할 가운데 발제의 대부분은 권력구조 문제만을 다뤘다. 대통령제, 내각제 등 권력구조는 권력 나누기일 뿐 자유의 확립·보호와는 관련이 없다. 자유를 중시한다면 ‘어떻게 국가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자유의 주적(主敵)은 국가권력이 아닌가. 현행 헌법의 치명적 결함도 국가권력을 제한할 장치가 부실하다는 점에 있다. 특히 의회의 입법권력을 제한할 헌법장치가 사실상 없다. 의회가 정한 것이면 무엇이든 법이 되는 형국이다. 그 결과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 특정 계층에 대한 특권과 차별 등이 법이라는 탈을 쓰고 경제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무엇이 법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철학적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쉬웠다. 중요한 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와 재산을 보호할 유서 깊은 정치적 이상(理想)으로서의 법치(法治)다. 특혜와 차별입법을 금지하는 평등성 등 법이 법으로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원칙 말이다. 이런 의미의 법치야말로 입법권력을 비롯한 모든 국가권력으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수호할 헌법장치다. 그럼에도 ‘의회가 제정하는 법에 따라 행하는 게 법치’라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개념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도록 한 게 헌법학이라는 걸 각성할 필요가 있다.
헌법 판결이나 입법을 안내하는 잣대로서 ‘이익형량’에 관한 발제도 있었다. 이익형량이란 경제적 자유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전제에서 이익 비교를 통해 사익과 공익의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인데 이를 규명하는 게 헌법학의 과제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법의 진정한 역할, 자생적 질서라는 시장의 고유한 특성 등에 대한 무지에서 생겨난 과제일 뿐이다. 이익형량에 따른 입법은 사법(私法)의 공법화이고 그 결과는 자유와 재산권의 유린이다.
삼권분립에 관한 논의도 흥미를 끄는 주제였다. 그러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삼권분립은 실패했다는 게 역사적 경험임에도 그 논의에서는 이를 간과했다. 상품·노동·금융시장 규제, 방만한 정부지출 등 자유를 억압하는 입법과 정책을 쏟아내는 게 삼권분립을 헌법적으로 보장한 한국의 일상적 현상이 아닌가.
삼권분립 실패의 근본 이유는 법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자유주의적 법치가 권력분립의 핵심 내용에서 제거된 탓이다. 요컨대 헌법학이 경제적 자유를 소홀히 하면 그 대가는 치명적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 빈곤, 실업 등 경제 문제 그리고 도덕의 파괴, 포퓰리즘, 사회적 갈등은 이른바 ‘시장의 실패’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법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초한 헌법의 결과, 즉 ‘헌법의 실패’다. 헌법학이 그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자유의 헌법학’으로 발전해야 한다. 헌법과 철학의 만남을 통해 학회가 내실있게 공부하는 모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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