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던 섬유도시서 大변신
'월드클래스 300' 기업 배출
대구 30개社로 비수도권 1위
[ 심성미/오경묵 기자 ]
대구가 ‘쇠락한 섬유 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스케일업(scale-up: 고성장 기업 육성)’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생산 공장의 해외 이전과 전통 제조업 침체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지방도시들도 중소기업의 스케일업을 통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구시와 한국경제신문사는 19일 대구은행 제2본점에서 ‘글로벌 스케일업 대표도시 대구를 향하여’를 주제로 ‘대구 스케일업 콘퍼런스 2019’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는 지난해까지 정부가 선정한 ‘월드클래스 300’ 기업 중 30개사를 배출해 경기·서울에 이어 비(非)수도권 1위를 차지했다”고 소개했다. 경기 침체에도 대구가 정책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프리스타·스타 기업(지역 유망 기업) 100’의 매출은 2017년 3조3262억원에서 지난해 3조5502억원으로 6.7% 증가했다. 고용도 1만2947명에서 1만3166명으로 1년 새 1.7%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 제조업 고용이 1.23%(5만6000명)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섬유 일변도이던 대구의 산업 구조도 다변화하고 있다. 1990년대 54%에 달하던 섬유산업 점유율은 12%로 낮아졌다. 물·의료·로봇·전기자동차 부품 업체가 섬유산업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권 시장은 “단순히 기업 유치에 머무르지 않고 스케일업 정책을 통해 연구개발(R&D), 규제 개혁, 초기 시장 창출 등을 지원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대구 중소기업의 스케일업 불씨를 키우기 위한 구체적인 제언이 쏟아졌다. 김용욱 대구연구개발특구본부장은 “전기차 수소차가 상용화되면 5~10년 안에 기존 자동차 부품 기업들이 수요처를 찾지 못할 우려가 있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차원에서 연구개발한 신기술을 지방 기업에 적극 이전해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서울뿐 아니라 지방도 기업 간 협력을 추구하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투자와 기술 협력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업 주치의' 165명, 대구 새싹기업 1 대 1 마크…성장판 확 키웠다
2000년대 중반까지 대구는 ‘성장동력을 잃은 도시’였다. 한때 주력이었던 섬유산업이 위축되면서 1990년대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전국구로 활약하던 우방 청구 등 대구 건설기업까지 1997년 외환위기를 넘지 못해 부도를 내면서 대구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이런 대구가 지속적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중소기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스케일업(고성장 기업 육성) 대표 도시’로 변신하고 있다.
19일 대구은행 제2본점에서 열린 ‘대구 스케일업 콘퍼런스 2019’는 이 지역 중소기업 육성정책의 성공비결을 공유하고, 저성장 시대에 지방 경제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대구지역 기업, 대학, 공공·연구기관 등에서 3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단계별·맞춤형 지원으로 차별화
대구 스케일업 정책의 핵심은 2007년 시작된 ‘스타기업 육성정책’이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 300개를 골라 이들 기업이 ‘스타벤처기업-프리스타기업-스타기업-글로벌 강소기업-월드클래스 300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단계별·맞춤형 지원정책을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결과 2017년 전체 대구 기업 중 0.1%(198개)인 고성장 기업(프리스타·스타·월드클래스300)이 신규 일자리의 11.3%를 창출했다. 2015~2016년 대구 스타기업은 기업당 6.8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일반 기업보다 4.5배 많은 고용창출 효과를 냈다.
배선학 대구테크노파크(TP) 기업지원단장은 “단순한 보조금 지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계명대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 40개 협력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연구개발(R&D)-기술지원-마케팅-판매’ 등 사업화 전 과정에서 꼭 필요한 도움을 준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대구테크노파크와 대구기계부품연구원 등 대구의 40개 기업지원기관에서 파견된 전담 프로젝트 매니저(PM) 165명이 기업 한 개씩을 도맡았다. ‘기업 전담주치의’로 활동한 것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정부가 대구의 스타기업 육성 시스템을 2011년 차용해 ‘글로벌 강소기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대구 스타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전기자동차 충전기 제조·운영업체인 대영채비다. 정민교 대영채비 대표는 “프리스타기업으로 선정돼 대구시 지원으로 2015~2016년 세계 최대 전자쇼인 CES에 참석할 수 있었다”며 “글로벌 기업이 CES에서 앞다퉈 전기차를 전시하는 걸 보고 사업 아이템을 전기차 충전기로 바꿨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에서 각종 R&D 및 디자인 자금을 지원받은 대영채비는 현재 전기차 충전기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1위 업체로 성장했다. 창업 3년 만인 올해 506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해 대구가 신기술의 ‘테스트 베드 도시’로 탈바꿈한 것도 지역 중소기업들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줬다. 홍석준 대구시 경제국장은 “자동차관리법, 도시계획조례 등 20가지 규제를 완화해 신기술 시장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대구 로봇기업은 2010년 23개에서 2017년 말 161개로, 물산업 기업은 같은 기간 181개에서 270개로 늘어났다.
“정부의 기술이전 절실”
토론회에선 대구 등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각종 제언이 잇따랐다. 스타트업 창업 지원보다 중소기업의 스케일업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궁극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 성장을 이끄는 건 스타트업 창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스케일업”이라며 “혁신적 신기술이 제품화되더라도 양적 확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자금이 창업 부문에만 몰려 있어 ‘허리’가 없는 기형적인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며 “지방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적극적인 스케일업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정부 및 연구소·중견기업과 기술 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자칫 기술 혁신에 뒤처져 도태되는 기업이 대거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미국 기업들은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을 사들이거나 투자를 한다”며 “중소기업-중견기업, 중소·중견기업-스타트업 등 기업 간 기술 협력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생태계가 지방에도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심성미/오경묵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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