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재정집행 문턱 낮춘다”...지자체 재원 사업 타당성 조사 스스로 한다

입력 2019-06-20 15:22   수정 2019-06-20 19:38



(박진우 지식사회부 기자) 정부가 지자체 자체 예산으로 하는 사업의 경우 타당성 조사 수행기관을 지자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사실상 타당성조사의 문턱을 낮춰 지자체의 재정 집행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얘기죠. 하지만 지자체 예산 낭비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정부가 타당성조사를 수행하도록 바꾼 법령을 불과 4년 만에 뒤엎는 셈이라 타당성조사의 취지가 또다시 무색해지는 것 아니냐는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고규창 행정안전부 지방재정경제실장은 지난 13일 세종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지방 규제 혁신토론회에서 “서울시를 비롯한 광역 지자체들은 각자 (타당성조사를 맡길 만한) 연구소를 가질 정도로 역량이 올라왔다”며 “최대한 타당성조사 규제를 풀어주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강성조 지방재정정책관도 “타당성조사 수행기관을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외에 시·도가 직접 선택하는 전문기관이 타당성조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내부에서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방무 재정정책과 과장은 “지자체 재정집행에도 속도를 내자는 의미에서 빠른 시간 내에 시·도지사에게 타당성조사 수행기관 선정권한을 위임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며 제도 변화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현행 지방재정법 시행령에 따르면 100% 지자체 자체 재원인 사업이라도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 행안부 산하에 있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서만 타당성조사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자체가 무분별하게 대규모 사업을 벌이는 것을 제3자인 정부가 걸러내자는 취지입니다. 타당성조사에서는 경제성(비용편익분석)과 재원 마련방안, 사업의 시급성 등을 평가합니다. 타당성조사 결과는 지자체 투자심사위원회에서 심사의 핵심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투자심사에서 사업안이 통과되면 예산을 편성하면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지자체 중복투자사업이나 부실사업을 사전에 걸러내기 위해 1992년 지방재정 타당성조사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의무화된 조사가 아니어서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이같은 비판을 감안해 2006년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대규모 사업의 경우 투자심사에 앞서 타당성조사를 받도록 의무화했죠. 비교적 최근인 2014년에는 아예 타당성조사를 행안부 산하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서만 받도록 더욱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정부가 지자체 재원 사업의 타당성 조사 권한을 사실상 지자체로 넘기면서 이같은 추세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규제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김정욱 KDI 규제연구센터 센터장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며 "객관성과 투명성이 전제되고 있는지에 대해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현행 지방재정 타당성 조사에 대한 날선 비판도 이어갔습니다. 김 센터장은 "지방재정 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 상당수 사업도 투자심사위원회에서 통과되는 것을 의아하게 보고 있다"며 "사업이 반드시 필요해서 추진되는 것인지, 경제성은 고려하지 않고 다른 이유로 추진되는 것인지 걸러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 법령 개정을 건의한 서울시는 지자체 자체 재원으로 하는 사업인데도 중앙정부가 사업을 검토하는 것은 지방재정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지방재정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반박했습니다. 지자체 돈으로 하는 사업인데 중앙정부의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박영민 서울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 1팀장은 "사업을 효율화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지방재정 타당성조사는 지역 여건을 아는 전문기관이 수행해야 한다"며 "타당성조사를 의뢰한 시점의 예상 사업비와 사업을 마친 시점의 사업비 변동폭이 30%인 사업은 16건 중 1건에 불과할 정도로 지자체 역량이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반면 "지방재정법 타당성 조사 신청부터 결과 통보까지 평균 11개월이 걸린 탓에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를 제외한 타 지자체와 행안부 내부에서도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가 직접 수행하는 타당성조사의 경우 공신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지방재정 타당성조사와는 별개로 지자체가 직접 수행하는 건설산업진흥법상 타당성조사가 있는데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강 정책관도 이날 토론회에서 “지자체 공공투자관리센터도 시·도 지원을 받는 기관이기 때문에 타당성조사의 객관성이나 독립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죠. 이어 “지자체가 지방행정연구원과 공동으로 (타당성조사를) 하는 방법, 일정 사업비 규모 이하의 사업만 위임하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끝)/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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