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능성의 미학

입력 2019-06-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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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우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jwpark@seoulbar.or.kr >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향년 97세로 타계했다. 이 여사의 소천에 김 전 대통령을 추억한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한 정상회담을 여는 등 여러 가지 공적이 있지만 김 전 대통령에게 가장 인상적인 점은 ‘DJP연합’을 통해 정권을 창출한 것이다. 그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은 비단 정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다.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차선을 모색하는 기술이라는 의미가 있다.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 전원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다. 서로 조율하고 양보하는 과정에서 차선책을 찾는 것이야말로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차선이 최선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호사업계에서도 사실관계를 분석해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알려주고 의뢰인의 선택을 도와주는 능력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승패가 명확한 사안보다는 절차가 진행되면서 조정과 타협을 통해 분쟁을 해결해나가는 사안이 더 많다. 조정이나 화해로 종결하는 것이 의뢰인에게 유리한 경우도 많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조정, 화해, 중재 등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 또한 법조계 가능성의 미학을 의미한다.

가능성은 여지(餘地)를 두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욕망이나 증오심에 사로잡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똑 부러지는 결단이 중요한 때도 있지만 뒷문을 열어두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우리 모두 모순투성이인 세상에 살고 있다. ‘내로남불’이라는 용어가 자주 회자되는 것도 그렇다. 공익과 사익의 조화라는 이상은 모순에 가깝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려면 결단력 있다는 평가보다는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느리게 결정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한번 결정해버린 것은 번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 정체성, 종교, 정치적 성향 등이 다를 수 있음을 존중하는 것 또한 가능성의 미학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남북 관계나 여야 정치권에서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은 희망이다.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 누구나 크든 작든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감을 맛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긍정적인 생각과 유연성을 가진 사람은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에 대처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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