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23일 포천힐스CC
첫날 2타 차 단독선두
2번홀서 트리플보기 악몽
마지막 5개홀서 버디 4개
[ 조희찬 기자 ]
골프에서 트리플 보기는 치명적이다. 오죽하면 1934년 시작한 남자 골프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토너먼트에 ‘더블 보기 징크스’가 생겼을까. ‘명인 열전’으로 불리는 이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트리플 보기는커녕 더블 보기를 기록한 선수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작은 거인’ 이승연(21)의 경기력은 이 징크스를 새삼 떠올리게 한 ‘괴물급’이었다.
이승연은 20일 개막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9’ 대회 첫날 트리플 보기 1개를 내주고도 버디 10개를 쓸어담아 7언더파 65타로 단독 선두에 이름을 올렸다. 10개의 버디는 그가 정규투어 한 라운드에서 기록한 최다 버디다. 7언더파는 처음 프로 대회를 연 포천힐스CC의 18홀 최소타로 자동 기록됐다.
신인인 이승연은 지난 4월 열린 넥센·세인트나인마스터즈 이후 2개월 만에 우승 기회를 잡았다. 신인상 레이스에서도 역전 발판을 마련했다. 우승하면 최혜진(20·3승)에 이어 올 시즌 두 번째 다승자가 된다. 이승연은 경기를 끝낸 뒤 인터뷰에서 “무아지경으로 샷을 했다”며 “이런 게 ‘그분’이 오신 날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드라이버 여덟 번만 잡고도 ‘버디 쇼’
이승연은 포천힐스CC가 낯설다. 연습라운드와 프로암을 포함해 이곳에서 27홀을 친 게 전부다. 그럼에도 이날 그는 6550야드로 세팅된 대회 코스를 마음껏 요리했다. 장타 덕에 가능했다. 그는 올 시즌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 258.52야드를 기록, 이 부문 2위에 올라 있다.
이승연은 3번 우드로도 투어 평균 수준인 240야드 안팎을 칠 수 있다. 19도 하이브리드로는 215야드가량 보낸다.
이승연은 이날 드라이버를 여덟 번 잡았다. 5개의 파3 홀을 제외하면 열세 번의 티샷 중 다섯 번을 다른 클럽으로 쳤다는 뜻이다. 이승연은 “거의 모든 홀에서 버디 기회를 잡았다”며 “가장 긴 버디 거리가 6m 정도였다”고 했다.
10번홀(파5)에서 버디로 시작한 그는 11번홀(파3)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심상치 않은 출발을 보였다. 14번홀(파3)부터 3연속 버디를 잡았고 후반인 1번홀(파5)에서도 버디를 기록했다.
2번홀(파4)이 ‘옥에 티’다. 우측으로 심하게 꺾인 도그레그(dog-leg) 홀을 의식하다 왼쪽으로 풀훅이 났다. 비스듬한 언덕배기에서 친 두 번째 샷마저 ‘생크’가 돼 홀 우측으로 벗어나며 로스트볼이 됐다. 5타 만에 그린에 공을 올렸고 2퍼트로 3타를 잃었다. 압권은 이후부터다. 마지막 5개 홀에서 버디 4개를 뽑아내 4타를 덜어냈다.
이승연은 “트리플 보기가 없었으면 ‘꿈의 59타’에도 도전할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2번홀 실수가) 약이 됐다”며 “이 덕분에 남은 홀에서 4타를 더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미소를 잃지 않았다.
몸무게 1.5배 덤벨 드는 160㎝ ‘작은 거인’
“프로필상 키는 160㎝”라고 말하는 이승연의 장타 비결은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그는 겨울 전지훈련 기간에 골프 연습만큼이나 근력 운동에 시간을 할애한다. 컨디션이 좋을 땐 자신의 몸무게 약 1.5배인 70㎏짜리 역기를 들고 스쿼트를 한다. 이승연은 “시즌 중에도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라며 “특히 하체 근력을 기르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장타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엉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승연은 앞서 열린 기아자동차한국여자오픈에서 있는 힘을 다 썼다고 했다. 4개 라운드 72홀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도 체력 관리를 ‘우승의 키’로 꼽았다. 이승연은 “이곳은 흔치 않은 산악코스기 때문에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며 “푹 쉬고 재충전해 남은 라운드에서도 오늘처럼 경기해보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조윤지(28)와 정예나(31)가 각각 2번홀과 11번홀에서 버디를 기록, 포천힐스CC 첫 버디의 주인공이 됐다. 조아연(19), 조정민(25), 김민선(24), 정희원(28)이 공동 2위 그룹을 형성했다. ‘디펜딩 챔피언’ 최혜진은 1언더파로 김보아(24), 백규정(24) 등과 함께 공동 34위다.
포천힐스CC=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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