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는 평등을 빌미로 획일화된 사회 낳는 무서운 정책"

입력 2019-06-21 17:32   수정 2019-06-22 10:55

자사고 재지정 탈락 위기 상산고 홍성대 이사장

사학 짓누르는 획일적 교육
인재 못 길러 사회 퇴보 부를 것
교육부 장관, 폐지 동의 말아야



[ 정의진 기자 ]
“다양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 핵심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는 사학의 자율성을 짓누르며 획일화된 교육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교육은 획일화된 인재를 낳고, 사회는 더 획일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사진)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율형 사립고 폐지는 평등이란 명분으로 획일화된 사회를 낳는 무서운 정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전주 상산고는 전날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전북교육청이 제시한 통과 기준 점수(80점)에 0.39점 모자란 79.61점을 받아 일반고로 전환될 위기에 처했다. 홍 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센 파고를 헤쳐나가려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획일화된 교육이 강요되면 이에 맞는 인재를 기를 수 없어 필연코 한국 사회는 퇴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 이사장은 사립학교의 자율성이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립고 앞에 ‘자율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모든 사립학교에 학생 선발권, 교과목 편성권을 최대한 보장해 사립학교마다 건학이념에 맞는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두 분야 모두 간섭하고 있다.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선발 과정에 지필고사를 운영할 수 없고, 교과목 편성에도 관여해 국영수 과목이 전체 교과목의 절반을 못 넘도록 하는 등 제한을 두고 있다.

학습 참고서 베스트셀러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 이사장은 한국 자사고를 대표하는 교육자다. 그는 1981년 상산고를 설립했다. 상산고는 2002년 자사고 전신인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된 이후 전북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고로 자리잡았다. 홍 이사장은 사재를 출연해 평생 상산고에서 미래 인재를 육성하는 데 집중했지만 17년 만에 상산고가 자사고 지위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작심하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홍 이사장은 특히 상산고가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전북교육청이 재지정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준 것은 부당하다고 토로했다. 전북교육청은 4점 만점인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항목에서 상산고에 1.6점을 줬다. 상산고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학생을 지나치게 적게 선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립고로 출범한 상산고는 사회통합전형 대상자를 선발할 의무가 없어 평가 지표의 적정성에 논란이 있었다.

홍 이사장은 “의무도 없을뿐더러 상산고만큼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해 동분서주한 학교가 없다”고 항변했다. 상산고는 2008년 울릉도에 사는 박모군으로부터 상산고에 입학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교사 두 명을 울릉도에 보냈다. 당시 두 교사는 토요일 아침 상산고가 있는 전북 전주에서 출발해 포항으로 건너가 배편으로 울릉도로 이동했다. 두 명의 교사가 박군과 학교 담임교사, 이웃 주민과 면담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이렇게 선발된 박군은 입학 초기에는 하위권을 면치 못했지만 결국 서울대 인문대에 입학하고 현재는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박군처럼 선발된 사회적 배려 대상자는 매년 상산고 입학 정원의 3%를 차지한다. 전북교육청이 제시한 기준은 10%다. 홍 이사장은 “상산고는 형편이 어렵더라도 의지가 있는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뽑기 위해 도서벽지 방문을 마다하지 않았다”며 “우리가 전국 곳곳을 도는 동안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반문했다.

홍 이사장은 교육부 장관이 전북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요청에 동의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 문제가 없다면 교육감의 지정 취소 요청에 동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홍 이사장은 단순히 절차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용의 적절성까지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으로 교육부 장관의 동의 절차를 의무화한 것은 교육감이 재량적 권한을 남용할 때 적절히 견제하기 위한 취지”라며 “유 부총리는 본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했다.

홍 이사장은 유 부총리가 끝내 교육청 요청에 동의한다면 사법적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원 판결마저 자사고 지위를 잃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면 어떡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치인은 감정에 치우쳐도 교육자는 감정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마음 같아서는 학교문을 닫고 싶지만 어떻게든 운영해서 인재를 길러야죠.”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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