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제 정치적 해결"
북핵 협상시계 다시 움직이나
[ 강동균/박동휘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1일 오찬 회담에서 “이번 방문이 원만한 성공을 이뤘다”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며 “여러 합의를 잘 실천하고, 북·중 관계 로드맵대로 한 걸음씩 결실을 보자”고 했다.
시 주석은 취임 후 첫 방북을 마무리하고 이날 오후 베이징으로 복귀했다. 인민일보는 이번 방북에 대해 “새로운 시대의 중·조(북) 관계 발전 방향을 분명히 하는 완전한 성공이었다”고 평가했다. 오는 28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날 시 주석에게 김정은이 ‘3차 핵담판’ 재개와 관련해 어떤 해법을 제시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급 예우 받고 떠난 시진핑
시 주석과 김정은의 다섯 번째 정상회담은 북핵 협상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양측 정상은 1박2일 내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미국과의 협상 재개 ‘타이밍’에 골몰하던 김정은은 ‘중국의 안보 지원’을 계기로 협상장에 다시 나설 명분을 얻었다. 중국도 ‘한반도 개입’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은 이날 오후 3시께 평양 순안공항을 통해 베이징으로 귀국했다. 김정은은 시 주석 일행을 이틀 내내 황제급 예우로 환대했다. 전날엔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금수산 영빈관으로 시 주석을 초청했다. 김일성이 묻혀 있는 곳이다. 목란관 만찬도 ‘역대급’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짜여진 행사는 ‘당 대 당’으로서 북·중이 정치적으로 혈맹임을 강조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시 주석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당 정치국 간부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북한이 본부청사에서 방북 중인 외국 정상과 별도의 기념촬영을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장쩌민,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했을 때도 기념촬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작년 3월부터 시작된 다섯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핵보유국 북한’을 사실상 용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 주석은 전날 환영만찬에서 “김 위원장과 성과 있는 회담을 통해 북·중 관계의 밝은 미래를 함께 그리며 중요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우리는 북·중 양측이 전통 우의를 계승하고 시대의 새로운 장을 계속 써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명분과 실리 주고받은 북·중
중국의 후원을 공식화함으로써 김정은은 미국과의 3차 ‘핵담판’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2차 하노이 회담 때처럼 또다시 원하는 것을 손에 쥐지 못하더라도 돌아갈 곳이 생겼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정은은 영변핵시설 영구 폐기 카드로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노렸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목표’ 달성에 실패한 바 있다. 당시 ‘하노이 노딜’은 김정은 체제에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실무협상 책임자였던 김혁철 대미특별대표는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시 주석도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 주석은 이날 공동성명과 전날 만찬사 등을 통해 “지역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 번영 실현을 위해 더 큰 공헌을 하자는 데 김 위원장과 의견을 같이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김정은을 설득해 비핵화 협상 테이블을 다시 차릴 것임을 예고한 발언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료는 “시 주석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28일 개막 예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때 최대한 많은 협상 카드를 들고 가길 원하고 있다”며 “그중 하나가 김정은을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마주 앉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김정은이 하노이 회담 때 내놓은 것 이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만한 카드를 시 주석에게 제시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로 전문가들은 시선 분산 효과를 꼽는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 관영 매체들의 보도 수준이 예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했을 당시보다 더 높은 것 같다”면서 “시 주석의 방북을 집중 조명해 홍콩 시위, 미·중 무역전쟁 등 부정적인 상황을 희석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번 방북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도 얻었다. 남·북·미 3자 구도였던 북한 비핵화 협상을 중국이 포함된 4자 구도로 바꿀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20일 한 토론회에서 “통일부의 대비가 즉각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베이징=강동균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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