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에 답장…美·北 '친서외교' 재개

입력 2019-06-23 17:53   수정 2019-06-24 04:17

김정은 "흥미로운 내용 심중히 생각"


[ 박동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북한 매체는 이를 즉각 공개했다. “훌륭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평한 김정은의 반응을 담았다. 미·북 간 ‘친서 외교’가 재가동되면서 3차 ‘핵담판’ 기대가 커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어보고 만족을 표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했다”며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친서는 북·중 정상회담(20, 21일) 전후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지난 10일 백악관에 ‘뜻밖의 친서’를 보낸 것에 대한 답장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에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공개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기조가 도발에서 대화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FFVD 원칙 지키되 '核 원샷 폐기'서 한발 물러났을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 외교’를 재가동했다. 어떤 내용이 오갔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핵화 개념 합의, 폐기 로드맵 작성, 대량살상무기(WMD) 동결’이라는 미국의 3대 목표에 대해 북한이 수용 의사를 내비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체제 안전과 경제 발전을 보장받는 등 ‘뒷배’를 확보한 김정은이 다시 트럼프 대통령과 ‘핵담판’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화와 외교’ 강조하는 북한

북한이 대미 전략을 도발에서 대화로 바꾸고 있다는 징후는 6월 한 달 내내 감지됐다. 기점은 지난 10일이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11일) 이를 공개하며 “매우 멋지고 아름다운 편지”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한·노르웨이 정상회담 직후 ‘김정은 친서’와 관련해 “미국이 내용을 알려줬다”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10일의 ‘김정은 친서’는 백악관에서도 예상 밖이란 반응이 나왔다. 직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두 차례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로 도발을 감행했다.

20일부터 이틀간 이뤄진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은 잇따라 대화와 외교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인내심을 가질 것”이란 발언이 대표적이다. 시 주석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고, 양국 정상은 “북·중 로드맵대로 한 걸음씩 결실을 보자”고 대외에 밀월을 과시했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23일 시 주석의 방북에 대해 “미국 대통령에게 3차 조·미(북·미) 수뇌회담 개최와 관련한 용단을 촉구하는 외교적 공세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트럼프 대통령 친서를 즉각 공개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친서’가 언제, 어떤 경로로 전달됐는지는 명확지 않다. 시 주석 방북 이전보다는 이후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10일의 ‘김정은 친서’와 북·중 정상회담에서 보낸 대미 메시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제안을 했고, 김정은이 적극 검토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 매체는 이날 “(김정은이)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깊고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 외교 소식통은 “미·북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유엔 대표부 등을 통해 물밑 접촉을 꾸준히 해왔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제안’ 내용은

양측 친서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는 추론의 영역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상 간 외교 문서인 만큼 협상 재개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라며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있다면 하노이 회담 직전에 미국이 설정했던 북핵 전략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올 1월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북핵과 관련한 미국의 3대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핵을 포함해 북한 내 모든 WMD를 신고받고, 이를 폐기하기 위한 시간표와 일정표가 담긴 ‘로드맵’을 만들며, 완전한 WMD 동결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이 영변핵시설 영구폐기와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맞바꾸려는 시도로 대응하면서 결국 하노이 회담은 ‘노 딜’로 끝났다. 회담 결렬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핵무기 등의 동결 없이 제재를 해제하면 미국이 북한의 핵무력 증강을 도와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의 방북이 상황 변화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은은 그동안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 체제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시설을 모두 공개할 경우 폭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체제 안전과 경제 발전을 보장하면서 북한이 이 같은 우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원칙을 단번에 이행하라는 ‘빅딜’론에서 백악관이 한발 물러섰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빅딜 요구는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기 위한 제스처”라며 “북한이 포괄적 로드맵 작성에만 합의한다면 폐기 절차는 대북제재 해제 등과 병행해서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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