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환법에 폭발한 홍콩…'무늬만 일국양제' 공포감 커져

입력 2019-06-23 18:54   수정 2019-06-24 02:09

글로벌 리포트

왜 홍콩 시민은 거리로 나왔나

중국에 대한 공포가 시위 불러
대만 총통 "일국양제는 실패"



[ 설지연/정연일 기자 ]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중국 송환법)’을 둘러싼 홍콩 정부와 시민 간 대치 상황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법안을 추진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이 공식 사과하고 법안 처리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들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21일 홍콩중문대, 홍콩과기대 등 7개 대학 학생회 주도로 열린 시위에서는 시민 수천 명이 홍콩 경찰본부를 포위하고 “정부는 송환법을 완전히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송환법이 과연 무언인지, 무엇 때문에 홍콩 시민들이 이렇게 격렬하게 반대하는지 등 이번 사태의 궁금증을 일곱 가지로 나눠 살펴본다.

(1)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일명 중국 송환법은 무엇인가

이 법안은 홍콩이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용의자를 쉽게 넘겨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홍콩은 영국, 미국 등 20개국과 인도 조약을 맺었지만 중국과는 아직 조약을 맺지 않고 있다.

(2) 법안 발의 계기는

지난해 2월 대만에서 벌어진 홍콩인 살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20대 홍콩인 남성이 대만에 같이 갔던 홍콩인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돌아온 사건이었다. 홍콩법은 영국의 속지주의(영외 발생 범죄 불처벌)를 따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살인죄를 처벌할 수 없다. 홍콩 정부는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올초 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중국, 마카오 등과도 용의자를 소환하고 송환하는 내용을 담았다.

(3) 홍콩 시민들은 왜 반대하나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행법에선 타국으로 범죄인을 인도할 때 홍콩 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법안 개정 뒤에는 의회 심의 없이 행정수반과 법원의 결정만 있으면 범죄인을 잡아서 인도할 수 있게 된다.

홍콩 행정수반은 시민의 직선제가 아니라 소수 선거위원단의 간선제 투표로 선출되고 중국 정부가 최종 임명한다. 중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중국 정부가 임명한 행정수반은 거부하기가 힘들다.

(4) 시위는 얼마나 컸나

홍콩 시위는 지난 3월 31일 처음 시작돼 당초 이달 12일 예정이던 송환법 2차 심의를 앞두고 거세졌다. 지난 9일 103만여 명이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해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홍콩 정부는 시위가 심상치 않자 2차 심의를 미뤘고, 20일 잡혀 있던 개정안 표결 처리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15일 발표했다. 그러나 16일에도 200만 명의 홍콩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람 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홍콩 인구가 740만 명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홍콩 시민 네 명 중 한 명꼴로 시위에 참가한 셈이다.

(5) 송환법 연기 이유는

홍콩 정부가 송환법 처리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한 데는 중국 공산당의 입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은 홍콩에서 시위가 계속되면 신장위구르, 티베트 등 중국의 이른바 ‘약한 고리’에서 반중(反中) 목소리가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오는 28~29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홍콩 사태가 의제로 오르는 것도 중국으로선 피하고 싶은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무역협상 압박 카드로 꺼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에 “내정 간섭을 중단하라”며 홍콩 문제가 주권 문제임을 분명히 했지만 미국은 이를 인권 탄압 문제로 접근해 중국의 주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6) 연기 이후에도 시위가 계속되는 이유는

홍콩 정부가 사실상 송환법 처리를 포기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시위대는 송환법의 완전 철회와 람 장관 사퇴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위는 표면적으로는 송환법 때문에 터졌지만,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간섭이 나날이 심해지는 데 대한 공포와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홍콩의 중국화’를 강행한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이 쌓였다는 얘기다. 올초 홍콩 시의회가 추진한 ‘국가법’ 제정에는 홍콩 내 공식 행사에서 중국 국가가 울려퍼질 때 기립하지 않거나 야유를 보내면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점점 줄어드는 정치적 자유도 홍콩인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반(反)시진핑 서점 5인 실종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5년 10~12월 홍콩 코즈웨이베이 서점 직원과 출판사 주주 등 5명이 중국 공산당과 지도부의 비리 등이 담긴 책을 출간하려다 잇따라 실종됐다. 이후 중국의 ‘감시 체제’에서 그 어떤 홍콩인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 커졌다.

(7) 홍콩의 일국양제 전망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지난 11일 홍콩 시위대를 응원하면서 “홍콩의 일국양제는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이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받던 시절 대만에선 볼 수 없는 책을 사러 홍콩으로 갔던 경험을 언급하며 “당시 홍콩은 자유의 공기와 선진화된 법을 갖춘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일국양제가 보장된) 50년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동안 대만은 민주화되고 자유로워진 반면 홍콩은 자유를 잃었다”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의 말처럼 홍콩의 일국양제는 점차 껍데기만 남고 실질적인 자치 원칙은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법적으로 보장된 2047년까지 일국양제가 무력화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이미 반중 인사 탄압과 정치·언론 등에 대한 개입, 통제로 홍콩인들이 수십 년간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퇴색하고 있다.

설지연/정연일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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