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GM과 산은에도 상환요구권 및 전환요구권 있어
-글로벌 자동차산업 재편이 본질.. 대응능력 키워야
≪이 기사는 06월03일(04:0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3월 초 한 국내 언론사는 산업은행이 쉐보레 등을 생산하는 제너럴모터스 한국법인(한국GM)의 향후 거취와 관련하여 미국 GM과 '이면합의'를 체결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한국GM은 해마다 수천억원씩 영업적자를 내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GM과 산은은 각각 한국GM이 발행한 우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수혈해 줬다.
이 때 발행한 우선주는 상환전환우선주(RCPS)인데, 한국GM이 2024년 이후 우선주를 되사들여 보통주로 전환할 권리(콜옵션)를 가졌으며 이 경우 산업은행의 의결권 비율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준선(15%)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 해당 보도의 요지였다. 근거가 된 것은 미국 GM이 작년 말 기준으로 발간한 연간보고서(10-K)였다.
해당 보고서에는 "한국GM은 우선주를 발행한 후 6년 후에 최초 발행가격에 되살 수 있으며(can call the preferred shares at their original issue price), 이런 요청을 받았을 때 투자자의 선택에 따라 (at the option of the holder) 우선주는 한국GM의 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산은, 한국GM 상환권 행사 요청시 보통주 전환 선택 가능
하지만 실제 양쪽에 주어진 권한은 보도로 알려진 것과 상당히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을 담당하고 있는 산은 투자관리실의 해명에 따르면 한국GM이 가지고 있는 것은 6년 후 우선주를 발행가격에 되사는 방식으로 돈을 상환할 수 있는 권리다. 우선주를 상환한다는 뜻은, 우선주 투자자에게 투자받은 돈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주식의 형태를 띠긴 했지만 대출금을 갚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이 경우에는 돈을 돌려줬으므로 해당 우선주는 소각된다.
그러나 한국GM이 상환을 요청한다고 무조건 상환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GM은 미국GM과 산업은행 양측에 상환권 행사를 요청할 수 있고, 이 때 투자자인 미국GM과 산업은행은 상환을 받고 우선주를 소각할 것인지, 아니면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것인지 중에 하나를 고르게 된다. 돈을 돌려받고 끝내든지 아니면 특별한 성격의 우선주 대신 의결권 없는 보통주로 바꿔서 일반적인 주주의 자격으로 돌아갈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뜻이다. 10-K 보고서에 적힌 문구에 상세한 내용까지는 담겨 있지 않지만 어쨌든 투자자에게 그런 선택지가 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미국 GM과 산은 모두 보통주 전환시 현재 지분율 유지돼
산업은행이 해당 보도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대목이다. 미국GM과 산은은 원래 한국GM에 대한 지분율과 유사한 수준인 83%대 17%로 자금을 투입했고 그 대가로 우선주를 받았다.
그런데 만약 우선주의 발행자인 한국GM이 상환을 요청할 때 투자자 중 미국GM만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꾸고 똑같은 투자자인 산은 것만 전부 상환해서 소각 처리할 수는 없다는 게 산은의 설명이다. 미국 GM이 보통주로 바꾸기로 한다면 산은 역시 보통주로 바꿔서 대응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미국 GM은 기존 대출 28억달러어치와 신규대출(대출 후 희망퇴직 비용으로 소진됨) 8억달러어치를 출자전환했다. 산은은 7억5000만달러어치 주식 대금을 줬다. 다 합하면 43억5000만달러이며 산은이 쓴 돈, 곧 산은이 받은 우선주의 비율은 17.2%다. 현재 지분율은 17.02%로 양측이 동등하게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오히려 미미하게나마 산은 지분율이 올라간다. 비토권 유지 기준 15% 이상을 유지할 수 있다.
◆산은 역시 한국GM에 상환 및 보통주 전환 요구권 있어
아울러 해당 우선주에는 투자자인 미국 GM과 산은은 발행자인 한국GM에 상환 혹은 전환을 요청할 권리가 각각 부여되어 있다. 미국 GM이든 산은이든 투자자로서 우선주 발행자인 한국GM에 발행가격에 우선주를 되사가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상환요구권),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전환요구권)는 얘기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GM이 보통주로의 전환을 요청한다면 산은 역시 보통주로 바꿔서 대응하면 그만이다.
"산은이 이면합의를 했다"는 해당 보도는 한국GM이 우선주를 되사들여 보통주로 전환하면 산은의 보통주 지분율이 15%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상환 후 소각되거나 보통주로 전환되거나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다는 점을 정확히 짚지 못한 셈이다. 이것이 '이면계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도 희박하다.
그렇다면 언젠가 미국 GM이 한국GM에 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상환요구권 사용)할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 가능은 하다. 하지만 양측은 합의 하에 한국 GM의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 출자전환을 통해 우선주를 받았다. 회사가 아주 좋아져서 떼돈을 번다면, 미국 GM은 상환을 요구해서 돈을 다시 받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국면이 온다면 산은 역시 마찬가지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해마다 수천억원씩 손실을 쌓아가는 이 회사가 43억5000억달러(약 5조1800억원)를 상환할 여력을 갖추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내연기관차 생산 점차 중단...산업 변화 대비해야
한국GM의 운명을 본질적으로 쥐고 있는 것은 자동차 산업의 향방이다. 메리 바라 GM 회장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힘겨루기를 벌이는 중이다. 바라 회장은 GM이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유럽 러시아 호주 태국 인도에서 잇달아 철수했다. 작년 11월 북미지역 5개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1만50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6일 미국 오하이오주 로즈타운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미국 내 일자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공장을 다시 열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바라 회장은 압력에 밀려 지난 9일 로즈타운 공장을 폐쇄하는 대신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GM의 향방은 이런 글로벌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큰 흐름 안에서 결정된다. 산은의 비토권이 시간을 늦출 수는 있지만,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GM이 내연기관 생산을 포기한다면 어떨까. 예컨대 독일 폭스바겐은 2026년을 끝으로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다. 2040년 무렵엔 내연기관차 자체가 운행 금지되는 나라도 상당히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산은 관계자는 "사실 5년 후에는 자동차 산업 전체가 전기차 등 차세대 위주로 재편이 진행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금 뜨겁게 논의되는 산은의 비토권 등은 존재한다 해도 실질적인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내연기관 자동차 자체가 퇴출되는 분위기에서 만약 GM 모체가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한국 법인의 운명을 비토권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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