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츠·신한알파…주식처럼 투자하는 상장형도 인기
김 부장은 10년차 부동산 투자자다. 갭투자부터 경매, 상가까지 안 해본 게 없다. 요즘은 빌딩 투자에 푹 빠졌다. 얼마 전 연 수익률 7%를 달성했다. 그가 들인 목돈은 1억5000만원 남짓. 1년 만에 1000만원 넘는 돈을 앉아서 벌었다. 임대료를 두고 임차인과의 갈등도 없었다. 부동산 간접투자상품인 리츠(REITs)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밥값으로 부동산 투자”
밥값이나 커피 한 잔 값으로도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인 리츠가 급성장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에서 운영 중인 리츠의 총 자산은 44조원으로 2017년(34조5000억원) 대비 10조원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리츠의 숫자도 193개에서 229개로 30개 이상 늘었다. 최근 5년 동안 해마다 30개 이상 증가하면서 규모가 꾸준히 불어나는 중이다.
리츠는 소액투자자들에게서 자금을 모아 전문가그룹이 부동산시장에 투자한 뒤 여기서 발생한 임대소득이나 매매차익 등의 수익을 배당으로 돌려주는 간접투자 상품 가운데 하나다. 개인도 공모에 참여하거나 주식을 매입해 대형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다. 부동산 투자 수익을 나눠주는 구조라는 점에서 부동산펀드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른 점이 많다. 부동산펀드는 하나의 펀드에 하나의 자산(부동산)만 보유할 수 있다. 리츠는 여러 개의 자산을 가질 수 있다. 부동산펀드는 주로 3∼5년 만기의 폐쇄형으로 만들어지고 만기까지 환매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식을 발행하는 상장 리츠에 투자할 경우 언제든지 매매할 수 있다.
발 빠른 투자자들은 속속 이동하고 있다. 번거로운 임대 관리를 직접 하느니 전문 운용사에 자금을 맡겨놓고 편하게 배당을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리츠가 보유한 부동산자산의 현금 창출력이나 입지에 비하면 큰 폭으로 할인된 가격에 공급된다는 장점도 있다. 신한리츠운용의 비(非)상장리츠인 ‘신한알파강남위탁관리리츠’는 지난달 판매 3분 만에 일반투자자들에게 300억원을 조달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선릉역 인근 ‘위워크타워’에 간접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다.
◆“오피스텔 팔고 리츠로”
과거 리츠는 대부분이 사모투자 형태여서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리츠코크렙’과 ‘신한알파리츠’ 등 대형 공모상장 리츠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일반인 투자자들에게도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결산 때마다 배당가능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일정한 수익을 내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최근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올 들어 상장 리츠 5곳의 평균 주가는 8.42%(24일 종가 기준)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폭(4.18%) 대비 2배 넘게 뛰었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리츠가 안정적인 주가와 배당 수익을 보인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장 리츠는 주식 매각을 통해 언제든 현금화 할 수 있는 유동성이 메리트다. 리츠 투자를 위해 아예 실물 자산을 정리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수도권에 오피스텔을 여러채 보유 중인 채모 씨는 최근 분양을 받아뒀던 오피스텔 계약을 해지하는 중이다. 채 씨는 “수익형 부동산은 향후 주변 입주로 임대료가 떨어지는 등 예상 불가능한 리스크가 크다”며 “리츠는 배당률이 높은 데다 배당금 예측 가능성도 높아 수익이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리츠 업계에서는 상장 리츠의 흥행이 투자자들의 신뢰가 두터워지는 과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폐쇄적인 시장에서 그나마 대중적인 상장 리츠들마저 영세했던 게 그간의 문제였다. 수익률이 낮은가 하면 부실 문제도 터졌다. ‘1호 상장 리츠’였던 ‘다산리츠’는 대표이사의 횡령과 배임 등으로 1년도 못 가 상장폐지됐다. ‘골든나래리츠’는 주가조작 문제가 불거지면서 리츠 시장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한 리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중대형 리츠들이 상장된 뒤 인기를 끌면서 리츠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분위기”라며 “1년 전만 해도 투자자들에게 리츠의 개념부터 설명해야 했다면 요즘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리츠·신한…판 커지는 상장 리츠
투자자들이 장바구니 가장 많이 담는 상장 리츠는 이리츠코크렙과 신한알파리츠다. 이리츠코크렙은 국내 상장리츠 가운데 첫 중대형 리츠다. 시가총액 3800억원 규모(24일 기준)다. 유통기업 이랜드리테일이 운영 중인 대형 쇼핑몰 가운데 매출 상위권 다섯 곳을 기초 자산으로 담고 있는 게 특징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의 NC백화점이나 아울렛에 간접투자하는 셈이다. 이들 점포에서 발생하는 연 임대료 수익은 지난해 말 기준 41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185억원가량이 두 차례에 걸쳐 배당됐다. 상장 당시 예상 연간배당금 169억원을 웃돌았다. 주당 배당금은 지난해 상반기 118원에서 하반기 175원으로 껑충 뛰었다. 올 상반기에도 같은 수준의 주당 배당계획이 공시됐다.
신한알파리츠는 도심 대형 오피스를 담고 있다.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 ‘크래프톤타워(옛 판교알파돔타워4)’와 서울 ‘용산 더프라임오피스’다. 당초 크래프톤타워만 기초자산으로 담고 상장됐지만 5개월여 만에 유상증자를 통해 용산 오피스를 자산으로 편입했다. 이들 빌딩은 주요 기업이 임차 고객이어서 공실 위험이 낮은 편이다. 용산 더프라임엔 신한생명과 KT 등이 입주했다. 판교 크래프톤타워엔 네이버와 카메라 앱 서비스 자회사 스노우, 인기 온라인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크래프톤 등의 기업이 입주했다. 신분당선 판교역과 바로 연결된 데다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밀집한 테크노밸리도 인근이다. 이 같은 입지 조건 때문에 공실이 없다. 입주를 원하는 기업이 있어도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한다.
신한알파리츠는 공모주 청약 당시 1140억원 모집에 4928억원이 몰렸다. 4.3 대 1의 경쟁률은 상장 리츠 최고 기록이다. 기대수익률은 5년 평균 연 6.1%, 10년 평균 연 7.0% 수준이다. 신한리츠운용 관계자는 “기업이 설비투자를 하듯 리츠 또한 주주들에게 성장성을 보여줘야 한다”며 “앞으로 선진국 리츠처럼 증자 등을 통해 20~30채의 빌딩을 담는 리츠로 키워나가는 게 장기적인 전략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상장 리츠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금흐름 부담이 커진 유통업계가 자산 유동화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기업 입장에선 부동산에 묶여 있던 돈을 현금화하면 신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다. 보유 부동산이나 건물을 리츠로 만들어 매각하고 기업은 임대료를 내는 방식으로 재무제표를 개선하는 것이다.
대어급 신규 리츠 상장은 이미 예고된 상태다. 올해 초 홈플러스리츠가 수요 예측 실패로 상장을 앞두고 미끄러졌지만 하반기 롯데쇼핑이 리츠 상장을 계획 중이다. 연매출 3000억원 수준인 대치동 롯데백화점 강남점이 기초자산이다. 상장에 성공하면 서울과 수도권의 백화점이나 아울렛을 점포별로 상장할 방침이다. 신세계그룹 또한 자산 효율화를 위해 실적 부진 이마트점포 등을 중심으로 리츠 활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NH농협리츠운용은 최근 국토교통부에 리츠영업인가를 신청했다. ‘서울스퀘어’와 삼성물산 서초사옥, ‘N타워’ 등 알짜 오피스 빌딩들의 일부 지분을 담는 재간접 리츠를 오는 10월 상장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리츠가 더욱 대중적인 투자자산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배세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국내 리츠 시장은 아직 활성화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지만 대형 리츠가 속속 나오기 시작하고 있어 장기적인 성장성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리츠는 다른 고위험 상품군과 비교하면 리스크가 낮은 게 특징”이라며 “다만 안정적인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물적 기반 리츠를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형진/안혜원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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