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算式 학자는 "자본가가 근로자 몫 빼앗아" 주장
韓銀은 중요 정책 오도하는 통계문제에 책임감 가져야
유경준 < 한국기술교육대 교수·前 통계청장 >
이달 초 한국은행은 ‘국민계정의 기준연도(2015년) 개편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디지털·공유경제를 반영했고, 영업잉여(기업소득)에서 자영업자 소득을 따로 볼 수 있는 혼합소득(mixed income)을 새롭게 분리해 제공한 점이 눈에 띈다. 아울러 2018년도 노동소득분배율도 발표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근로자가 받은 보수와 사용자의 영업잉여를 모두 합한 금액에서 근로자가 받은 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한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은 2010년 58.9%에서 지난해 63.8%까지 높아졌다.
즉, 근로자 보수의 증가율이 거의 매년 기업의 영업잉여 증가율을 웃돌면서 노동소득분배율이 꾸준히 상승한 것이다. 따라서 한은 발표대로라면 현 정부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의 근거는 사라지게 된다.
‘소주성’은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시각을 바탕으로 한 경제정책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에선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아 왔는데, 이젠 그걸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경제정책이다. 그런데 한은이 발표한 우리나라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수십 년간 증가 추세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
사실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 산식은 부분적으로 한계가 있다. 한은은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할 때 피용자(근로자) 보수 대비 피용자 보수와 사용자 영업잉여 합의 비중, 즉 ‘피용자 보수÷(피용자 보수+영업잉여)’ 산식을 사용한다. 이 산식의 기본적인 문제점은 자영업자의 소득을 모두 자본소득인 영업잉여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은 식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자영업자의 노동소득이 분자에서 빠짐에 따라 노동소득분배율의 수준 자체를 낮게 한다. 또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는 자영업자의 소득이 감소하는 추세라면 노동소득분배율이 높아지는 추세로 계산된다.
자영업자 소득 일부는 '노동소득'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내외 학자들은 자영업자의 영업잉여를 ‘노동소득과 자본수익의 혼합’이라는 의미의 혼합소득으로 분리한다. 이제까지는 혼합소득 항목의 통계가 별도로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영업자 영업잉여 중에서 ‘근로자 임금소득의 절반 정도’ 식으로 자영업자의 노동소득을 배분했다.
이번에 발표된 한은 국민계정을 바탕으로 최근 노동소득분배율 변화를 계산한 것이 <그림 1>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자영업자 영업잉여의 일부가 노동소득으로 분리됨에 따라 노동소득분배율은 한은의 정의와 비교해 약 3∼4%포인트 올라간다. 따라서 자영업자의 비중이 다르고 노동소득분배율의 정의가 같지 않다면, 국가 간 수준 비교는 별 의미가 없어진다.
노동소득분배율은 또 위의 분자 문제뿐 아니라 분모 문제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국내외 많은 학자들은 계산 편의를 위해 노동소득분배율의 분모로 ‘피용자 보수+영업잉여’가 아니라 ‘총부가가치’를 이용해왔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영업자 영업잉여의 일부를 노동소득으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을 산출한다. 또는 노동소득분배율을 아예 ‘1-자본소득분배율’로 사용하는 세계노동기구(ILO)의 연구도 많다. 위 방식을 이용해 1975년 이후 최근까지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하면 <그림 2>의 점선과 같이 ‘1990년대 중반 이후 2010년까지는 지속적인 감소 추세이나, 2010년 이후에는 증가 추세’로 나타난다. 이런 방식의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지난 수십 년간 노동소득분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고 주장하며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란 시나리오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노동소득분배율 계산을 흑백 논리로 접근한 잘못된 것이다. 즉, 노동소득분배율을 단지 ‘생산 측면’에서 접근한 계산 방식으로, ‘감가상각’이란 중요한 요인을 간과했다. 이 문제는 일부 학자의 국민계정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다.
국민소득 측정에서 ‘삼면등가의 원칙’이라는 초급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알 만한 원칙이 있다. 국민소득을 계산하는 방식은 생산, 지출, 소득의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득불평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생산측면 접근(production approach)’이 아니라 ‘소득 접근법(income approach)’으로 계산하는 게 옳다. 이 두 접근법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감가상각, 즉 ‘고정자본소모(consumption of fixed capital)’라는 항목이 자본소득에 포함되느냐 여부다.
노동소득분배율의 분모로 총부가가치를 사용하면 고정자본소모가 포함돼 노동소득분배율 계산에 잡음(noise)이 발생한다. 소득 접근법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해 보면, <그림 2>의 실선과 같이 한국에서 지난 수십 년간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졌다는 근거는 대부분 사라진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국이나 OECD 국가들이 최근 심화된 소득불평등의 원인을 자본과 노동 간 소득분배의 악화(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에서 찾는 것은 통계 분류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
소주성은 혁신과 상극?
이는 생산과정상 중간 투입으로 처리되던 연구개발(R&D) 비용이 2008년부터는 자산으로 처리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에 따라 자본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영업잉여와 고정자본소모가 동시에 증가했다. 달리 말하면, 생산 측면에서 고정자본소모가 포함된 자본소득분배율의 증가(노동소득분배율의 감소)는 과거보다 장래 대체투자가 더 필요해져 R&D가 급격히 증가했고, 그에 대한 감가상각이 급속도로 커진 데 기인한 바가 크다. 따라서 생산 측면에서 계산된 노동소득분배율의 감소가 강조되면 혁신을 위한 R&D 투자를 늘려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소주성은 경우에 따라 ‘혁신성장’과 모순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전체 국민소득에서 고정자본소모(감가상각)가 차지하는 비중이 1975년 약 7.5%에서 2017년에 19.3%로 두 배 이상 증가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통계로 인한 갈등 해소해야
한은은 내부적으로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국민계정을 생산하는, 경제정책의 한 축인 한은이 이를 간과했을 리 없다. 그러면 노동소득분배율 문제로 인한 계층 간 갈등이 유발돼 우리나라가 이렇게 요동치고 있는데, 한은이 침묵을 고수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침묵은 금’이라는 조직문화 탓인가. 한은은 국민소득을 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경제를 선도해야 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한은이 절간의 수도승 같은 조직문화를 계속 유지하고 진실에 침묵한다면 대한민국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겠는가?
한은은 학자들이 통계를 잘못 쓰는 것까지 책임져야 하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계정 통계를 독점하고 공식 노동소득분배율을 발표하는 기관이라면, 국가 중요 정책과 관련해 심하게 오도되는 통계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은이 이제는 넓은 세상으로 나와 더 많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