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에 '야만적인 조리돌림' 안돼" 제주 경찰에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

입력 2019-06-26 11:17  

"고유정 조리돌림…” 경찰 해명 불러온 역풍
'고유정 조리돌림' 걱정…CCTV 숨기기까지
법조인 "왜 관행대로 하지않고 이 사건에서만"





제주 경찰이 ‘전 남편 살인 사건’ 피의자 고유정(36)에 대해 현장검증을 하지 않은 이유로 "야만적인 조리돌림 당할까 우려해서 내린 결단이었다"고 해명해 뭇매를 맞고 있다.

제주 경찰은 고유정이 살인혐의 등을 인정한 다음날인 지난 7일 현장검증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당시 경찰 측은 "피의자가 우발적 살인을 주장하고 있어 현장검증의 실익이 없다"며 "현장검증 미실행은 검찰과 협의가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 통신망 '폴넷'에 올린 글에 따르면 제주동부경찰서 박기남 서장은 "피의자가 범행 동기를 허위 진술로 일관하고 있었고 범죄 입증에 필요한 DNA, CCTV 영상 등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에서 현장검증을 하면 고유정이 ‘야만적인 현대판 조리돌림’을 당할 수 있다'면서 현장검증을 안하는 것으로 결단을 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제주 경찰의 해명에 "그럼 예전에 잔혹 범죄 현장검증한 경찰들은 '야만적인 조리돌림'을 즐기려고 진행했던 것이냐", "이해가 되지않는다. 실수를 했으면 인정할 것이지. 희대의 토막살인범을 보호하느라 정작 피해자인 아이 아버지의 인권은 어디로 갔나", "신상공개에도 불구하고 머리로 얼굴 다 가릴 수 있게 하고 고유정에 대한 보호가 지나치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조리돌림은 형벌의 일종으로서 육체적 체벌은 없지만 해당 죄인의 죄상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죄인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의로 망신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제주 경찰은 초동수사가 부실했던 이유와 사건 현장인 펜션에 폴리스라인을 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했다.

제주 경찰은 "이혼한 부부가 어린 자녀와 있다가 자살 의심으로 신고된 사건에 대해 초기부터 강력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하라는 비판은 결과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비판"이라며 여론의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초동대처가 부족했다는 정황은 초기 이 사건이 단순 실종이나 자살 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기 때문에 불가피 했다는 것이다.

제주 경찰은 이어 "지난달 27일 (피해자가) 자살할 우려가 있다는 최초 신고에 따라 피해자 최종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를 파악했고 실종수사팀원 2명을 투입해 주변을 수색했다"며 "피해자 차량을 발견했지만 자살로 볼만한 정황이 없었고 CCTV에 피해자 이동 모습이 없어 범죄 혐의점이 의심됐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경찰의 부실수사 정황은 사건 발생 현장의 인근 CCTV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가 유족이 직접 찾아 제공하자 범죄 수사에 착수한 것과 사건 발생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펜션주인에게 내부 청소를 할 수 있게 한 점 등이다.

이들은 펜션에 폴리스라인을 치지 않는 등 현장 보존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폴리스라인 설치 시 불필요하게 인근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상한다"며 "주거의 평온을 해할 우려가 있었다"고 이유를 들었다.

수사 과정에서 혈흔을 찾는 루미놀 검사는 사건 발생 일주일 후인 지난달 31일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검사 후에는 펜션 주인이 사건 현장을 청소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제주 경찰은 "해당 펜션은 독채이며 주 범죄 현장은 펜션 내부"라며 "지난달 31일 내부에 대한 정밀 감식 및 혈흔 검사를 완료했다"고 반박했다.

또 경찰은 지난달 27일 고유정이 범행 장소를 떠나며 쓰레기 종량제봉투 4개를 버린 사실을 미리 알았으나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도 뒤늦게 알려졌다. 피해자 유족이 쓰레기 처리시설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인한 후에 이를 묻자 경찰은 그제서야 "펜션 주변에 버린 것은 범행 과정에 사용했던 이불이나 수건 등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유정 사건에 있어서 경찰은 최초 CCTV 확보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유정이 범행장소를 떠나며 쓰레기 종량봉투 4개를 버린것을 알고도 확인없이 이불등으로 인지하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점만으로도 부실수사라는 비판으로 부터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의 기본원칙인 범장현장의 폴리스 라인 설치 그리고 현장검증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여러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폴리스라인 설치는 범행현장에서 발생할수 있는 증거인멸,조작, 오염을 막기 위한 기본 중 기본적인 수사절차이고 현장검증 역시 범인만 알 수 있는 범행수법의 재현을 통해 위장 자수등을 막고 범행재현 등을 통해 범죄의 진상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기본 수사절차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유정 사건은 현재까지 시신의 일부 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얼마나 잔혹한 방법으로 사체손괴를 했다는 것인가?"라며 "형사사법 정의실현의 관점에서 무차별적 인권침해와 과잉처벌을 해서도 안되지만 기본수사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피의자를 과잉보호 해서도 안되고 죄질에 부합하지 않는 과소처벌도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지금 제주 경찰이 간과하는 것은 과잉수사를 통해 인권이 침해되는 현상이 아니라 기본적인 수사절차를 진행 하지 않음으로서 사후에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라면서 "현재 발생한 흉악사건에 있어서 폴리스 라인 설치 및 현장검증을 실시하는 타 수사기관은 다 주민보호에 미흡하고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김가헌 서울시 공익 변호사 또한 "조리돌림을 우려해 현장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인권보호 측면에서는 타당한 말인데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현장검증을 통해 작성한 검증조서를 증거로 제출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하필 이 사건에서만 위와 같은 판단을 한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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