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끄는 에너지 회사로
석유화학 넘어 전기차 시장으로 질주
[ 김재후 기자 ]
SK이노베이션은 정유·화학 회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SK이노베이션은 비정유사업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전기차 배터리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김준 총괄 사장 취임 이후 딥체인지 2.0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선언이 가시화되고 있다.
‘아프리카’에 ‘오아시스’를
김 사장은 최근 아프리카 초원 전략을 가속화해 생태계 전체가 공존할 수 있는 오아시스를 파는 전략을 도입하기로 했다. 김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딥체인지 2.0을 선언하며 적자생존의 아프리카 초원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사업 구조를 혁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신규 사업도 안착시켰다. 하지만 김 사장은 SK이노베이션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판단하고 있다. 비즈니스 생태계의 미래를 위해선 또 한 번의 뼈를 깎는 ‘독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오아시스론을 들고 나온 배경이다.
실제 김 사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아프리카에 일시적으로 조성된 생태계는 오아시스가 있어야지만 지속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이 가야 할 길은 독한 혁신을 통해 아프리카 초원에 오아시스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2년 전 언급한 딥체인지 2.0의 핵심인 글로벌·기술 중심경영 전략에 그린 이니셔티브(green initiative)를 추가한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SK이노베이션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키로 했다. 기존 정유사업에 치중한 사업 구조를 △배터리와 소재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화학 사업의 패키징오토모티브 분야 다운스트림 확장 △중국의 연화일체화 참여 △석유 사업의 VRDS(감압 잔사유 탈황설비) 등 친환경 사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 △북미 셰일자산 확보 및 남중국·베트남 신규 유전 발견 등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해외로부터 도입한 원유를 정제해 석유·화학 제품을 판매하는 전통적인 석유 및 화학 사업 중심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배터리, 셰일가스와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등장 및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이다.
전기차 배터리 렌털 사업까지
가시적인 성과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부문은 후발 사업자임에도 최근 들어 급성장하고 있다. 매출 기준으로 2017년 세계 18위에서 지난달 기준 8위로 뛰어올랐다.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인 중국에서 중국 정부가 자국 회사에만 보조금을 주는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다.
미국과 중국에서 잇따라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고, 수주도 잇따르고 있어 순위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최근엔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하는 것을 놓고 협의 중이다.
이를 토대로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만 그치지 않고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업을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른바 ‘5R(Repair·Rental·Recharge·Reuse·Recycling)’을 모두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플랫폼인 BaaS(Battery as a Service, 배터리를 새로운 서비스 플랫폼으로 만드는 전략)’도 함께 추진 중이다.
김 사장은 “단순히 배터리를 만들어 공급하는 게 아니라 최신 기술을 선도하며 배터리 시장을 끌고 나가는 동시에 배터리를 활용해 서비스 사업에도 진출해 종합적인 ‘e모빌리티’의 사업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배터리 사업 확장을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산업용, 주거용 등 세분화된 시장 특성에 맞춰 배터리를 개발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ESS 시스템을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후방 사업 모델도 개발해 종합적인 에너지 솔루션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 관계사들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환경 개선하는 ‘그린 밸런스’ 경영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의 최대 매출을 내는 계열사로서 최태원 그룹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안도 밝혔다. 그룹의 덩치가 커진 만큼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으로, 쉬운 말로는 ‘더 착한 기업’이 되겠다는 얘기다.
김 사장은 “기존 사업이 환경에 끼치는 부정 영향을 축소하고 친환경 사업 모델을 개발해 환경 마이너스 가치를 상쇄하는 ‘그린 밸런스’를 추진하겠다”고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다.
정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은 업태 특성상 환경오염 등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SK이노베이션이 자체적으로 집계한 관련 비용만 해도 지난해 기준 1조4000억원 정도가 환경 영역에서 발생한 비용이다.
김 사장은 “환경을 개선하거나 환경오염을 막는 기술이나 경영에 가점을 주는 그린 이니셔티브 정책을 글로벌 확장과 기술 중심 등의 전사적 경영 전략에 이어 3대 성장 전략으로 삼겠다”고 했다. 김 사장은 그러면서 “지구 온난화 등 외부 환경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회사 경영이 더 안정된다”며 “독한 혁신을 통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 보텀 라인(DBL:Double Bottom Line) 경영을 강력하게 실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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