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가 극동의 개발도상국을 주목한 계기는 1976년 주베일항만 공사였다. 바다 한복판에 30만t급 유조선 네 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는 정박시설(3.5㎞)을 건설하는 ‘20세기 최대 역사(役事)’였다. 수주액(9억3000만달러)도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25%에 달했다.
이 난공사를 해낸 이가 정주영 현대 회장이다. 그는 울산에서 대형 철 구조물 89개를 제작해 보낸다는 황당한(?) 계획을 강행했다. 구조물 하나가 높이 36m, 무게 500t이었다. 게다가 1만㎞를 배로 운반한다니 국내외 전문가들은 모두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대형 바지선을 이어붙여 예인하는 방식으로 35일간 19번 항해 끝에 성공했다. 그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아산만방조제의 유조선공법으로 또 한번 빛났다. “이봐, 해봤어?”라던 그의 말에 도전정신이 함축돼 있다.
‘거인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그 아들 손자 세대가 기업을 이끌며 사우디와의 인연을 잇고 있다. 그제 방한한 사우디의 젊은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4)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집이던 승지원에서 5대 그룹의 젊은 총수들과 회동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무함마드는 모든 것을 다 갖고,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불린다. 2016년 ‘탈(脫)석유 시대’에 대비해 ‘비전 2030’을 내놓고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아람코의 실질적 오너이며, 여성 운전을 허용한 계몽군주이자 언론인 암살 배후로 의심받는 전제군주다.
무함마드가 이끄는 사우디는 매우 실리적인 국가로 변신하고 있다. 무함마드가 에쓰오일 등에 10조원(약 83억달러)의 ‘통 큰 투자’로 국내에서 환영받았지만 올초 중국에 280억달러, 인도에는 2년간 10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살만 국왕이 2년 전 일본 등 아시아 6개국을 순방할 때 한국은 건너뛴 적도 있다. 사우디와의 관계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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