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의 데스크 시각] 총선만 이기면 그만인가

입력 2019-06-30 18:35  

이심기 정치부장


[ 이심기 기자 ]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집권해도 우리만큼 못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니까 이만큼 한 것”이라며 이렇게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노동 문제에 관한 한 할 만큼 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나온 노동정책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완화를 골자로 하는 ‘양대 지침’을 폐기해 노동단체의 숙원을 풀어줬다. 노동계의 ‘장기미제’ 사건도 해결했다. KTX 여승무원 복직, 삼성전자의 산재 책임을 둘러싼 ‘반올림’ 문제, 쌍용자동차 해직자 복직 등이다.

청와대와 노동계의 '배신 논란'

청와대가 이토록 ‘공’을 들였지만 노동계와의 관계는 악화일로다. 민주노총은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전면전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를 반노동·친재벌 정부로 규정했다. 시위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분노가 터져나왔다. 민주노총의 반정부 시위를 지켜보는 청와대의 속내는 착잡하다. “변할 것을 기대했는데…”라는 아쉬움에서 “받기만 하고 주는 게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사회적 대타협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작동 불능 상태다.

정부가 의도한 정책 효과가 나오지 않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소득주도성장은 ‘선의의 정책’일지 몰라도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들을 괴멸적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현장 정책토론회에서 소상공인들은 이해찬 대표를 향해 “최저임금은 죄가 없다고 하지만, 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지 만 1년이 지났지만 근로시장 양극화와 노동현장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이 크다. 정부가 의도한 ‘저녁이 있는 삶’은 사라진 채 ‘얇아진 월급봉투’의 고통을 호소하는 현장의 비판은 커지고 있다. 버스요금 인상처럼 주 52시간제의 사회적 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외교·통상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3자 회동이 극적으로 이뤄졌지만 북한 비핵화는 여전히 다른 나라들의 수중에 달려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북한이 문 대통령을 향해 막말 수준의 비방을 하는 것도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정책 신뢰도 바닥으로 추락

미·중 무역갈등 상황에 대응하는 자세 역시 당당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많다. 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미국과 중국,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외교적 화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할 말을 제대로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한·일 외교갈등도 단기간에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일촉즉발의 경제전쟁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청와대는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 수준이다. 실질이 아니라 시대착오적 이념으로 뼈대를 세운 정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가서 내년 총선만 이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범여권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전언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이다. 결코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지자들이나 들어줄 법한 자화자찬에 머물며 야당의 지리멸렬을 즐길수록 여당의 패배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더욱 근본적으로 나라 꼴이 어떻게 되든 총선만 이기면 다인가?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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