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동 기자 ]
한때 마블의 영화 어벤져스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전 예매만 200만 명을 돌파할 정도였다. 이런 폭발적인 인기는 독과점 논란을 낳았다. 이 영화의 좌석 점유율과 예매율이 각각 83%, 95%에 달하면서 스크린 독식 문제가 제기됐다. 일각에선 ‘스크린 상한제’를 도입해서라도 쏠림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것을 통해 국내 영화와 비인기 영화가 더 자주 상영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일종의 국내 영화 보호다. 이런 주장은 옳을까?
스크린 상한제 논란과 국내시장 보호
스크린 상한제와 같은 보호정책은 국제무역에서도 등장한다. 유치산업보호론이 그것이다. 유치산업보호론이란, 국내에서 초기 단계에 있는 산업을 일정 기간 보호해주면 그 산업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이론이다. 성장잠재력은 있지만 현재의 경쟁력은 뒤떨어져 있는 산업을 유치(幼稚)산업이라고 말한다. 적지 않은 나라들이 자국의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장벽을 치기도 한다. 나중에 크게 될 나무의 어린 싹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스크린 상한제뿐만 아니라 스크린 쿼터제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는 스크린 쿼터제를 점차 완화해 왔다. 초기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시장지배를 막기 위해 일정 일수 동안 한국 영화를 상영하도록 했었다. 하지만 국가의 보호는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살리지는 못했다. 국제적 기준에 맞춰 영화 시장을 개방하자, 한국 영화의 시나리오가 좋아지고, 멀티플렉스가 생겨나고, 대규모 투자가 잇따르는 선순환 구조가 생겨났다. 스크린 쿼터제 완화 이후 국제영화계에서 인정받는 국내 영화가 등장하였고,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도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에 대한 유치산업보호론이 점점 힘을 잃어갔다.
한국의 중화학공업 육성
한국의 중화학공업화 과정을 살펴보면 유치산업 보호의 혜택을 받은 업종에 해당한다. 한국은 1960년대를 지나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산업의 육성이 필요하였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지향 산업화 정책이 등장하였다. 조선·석유화학·철강 등의 산업이 이때 토대를 다졌다. 유치산업보호론이 이때도 적용됐다. 국제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국가가 나서 보호장막을 쳐줬다. 기업들에 조세 감면, 금융 지원의 각종 혜택을 부여했다. 하지만 유치산업 보호만으로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란 어렵다. 나라마다 산업발전을 위해서 초기에는 유치산업보호론을 적용하여 국내 산업을 보호하였다. 하지만 경제를 성장시키고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들만이 성공하였다. 반면 같은 시기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들의 성장은 정체 상태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경쟁과 소비자 선택
바로 시장 경쟁의 논리다. 산업을 보호만 한다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산업을 보호만 한 남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의 기업들은 국제 시장에서 경쟁했다. 결국 자유무역의 국제사회에서 국내를 넘어 해외 소비자들에게도 많은 선택을 받아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비록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외국 영화일지라도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도 그 이유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정부는 산업을 보호만 하지 않고 수출경쟁에 뛰어들도록 유도했다. 삼성, 현대, 롯데, LG, SK 등의 글로벌 기업들이 탄생한 이유다. 일정 기간 보호 이후 기업가 정신과 시장경쟁을 발휘하도록 한 게 경쟁력의 비결이었다. 결국 산업의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호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
● 스크린 상한제
관객들이 몰리는 주요 시간대에 특정 영화의 상영관 스크린 수를 제한하는 제도다.
● 스크린 쿼터
스크린쿼터는 한 나라의 모든 극장이 매년 일정 기간 또는 일정 비율 이상 자국 영화를 의무 상영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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