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기업들 잇달아 중국 탈출…글로벌 가치사슬 붕괴 가속화

입력 2019-07-02 18:18  

미·중 무역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대변동'

中 '제조 2025' 야심에 美 "글로벌 공급망서 배제하겠다"
관세 피해 생산기지 이전 활발…베트남 등 동남아 반사이익
중국 중심 생산전략 한계…산업구조 고도화로 경쟁력 높여야

양준영 논설위원



[ 양준영 기자 ]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 ‘2차 휴전’에 합의했다. 미국은 3000억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려던 계획을 일단 보류했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고, 세계 경제는 한숨 돌렸다. 하지만 일시적이고 불안한 휴전일 뿐이다.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지식재산권 보호, 강제 기술이전 금지 등 핵심 쟁점은 언급조차 없었다. 언제든 갈등이 재점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중 갈등은 더욱 가속화·장기화할 전망이다. 단순한 관세전쟁이 아니라 기술전쟁, 패권전쟁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관세폭탄을 피해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지난 20년간 중국 중심의 ‘글로벌 가치사슬(밸류체인)’은 붕괴되고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제품의 설계, 원재료·부품 조달, 생산, 유통·판매 등 각 과정이 다수 국가와 지역에 걸쳐 형성된 분업체제를 말한다. 미국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핵심 기술을 공급하며 두뇌 역할을 해왔다. 한국 일본 등은 핵심 부품과 재료를 공급하고, 중국이 최종 조립자가 돼 제품을 생산했다. 수백 개 공급업체의 부품으로 조립되는 애플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함께 글로벌 가치사슬은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를 성장시킨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중국은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통해 인공지능(AI), 로봇, 반도체, 전기차 등 미래 첨단산업에서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중국은 제품 개발부터 부품·원자재 조달, 완제품 생산까지 완료하는 ‘홍색 공급망’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中기업 93% 공급망 전환 검토

미국의 의도는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대표 기업인 화웨이를 거래제한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미래 핵심산업인 5세대(5G) 이동통신 분야에서 구축한 중국의 가치사슬을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국제 질서 주도권을 놓고 중국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도 ‘중국 고립’ 의도를 노골화했다. 협정 참여국이 ‘시장경제 지위’를 얻지 못한 나라와 FTA를 체결할 경우 협정을 무효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비(非)시장경제 국가는 중국을 의미한다.

미국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국을 떠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에 균열을 내고, 현지 생산기지를 둔 글로벌 기업들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이미 승자다. 최근 애플이 중국 내 생산시설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대변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애플은 주요 공급업체에 생산시설의 15~30%를 중국 밖으로 옮기는 방안을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구글은 하드웨어 생산시설 일부를 중국에서 대만과 말레이시아 등지로 옮기고 있다. 일본 샤프와 교세라도 노트북PC, 프린터 생산라인 이전을 검토 중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 역시 공급망 조정을 고려하고 있다.

글로벌 로펌인 베이커맥킨지가 지난 4월 호주, 중국, 홍콩,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600개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2%가 ‘공급망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150개 중국 기업 가운데서도 공급망 조정을 고려하는 곳이 93%에 달했다. 이들 중 18%는 공급망과 생산기지 전환을 고려하고 있고, 58%는 큰 변화를 모색 중이라고 답했다. 중국 주재 미국 상공회의소의 5월 설문조사에서도 회원사의 40%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이 고민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급망을 다각화하려는 기업에 동남아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중국에 인접한 데다 낮은 임금, 높은 성장률 등에 힘입어 무역분쟁의 최대 수혜국이 됐다. 중국 외 지역에 생산기지를 추가 건설하는 ‘차이나 플러스’ 제조 전략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올 1~4월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급증했다. 휴대폰, 섬유, 수산물, 반도체 등이 고르게 증가했다. 한국의 대미 수출도 17% 늘었다. 반면 중국의 대미 수출은 13% 감소했다.

무역분쟁 전부터 '차이나 엑소더스'

일본 노무라증권은 미국과 중국이 수입처를 대체하면서 베트남이 1분기에만 국내총생산(GDP)의 7.9%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분석했다. 대만(2.1%), 칠레(1.5%), 말레이시아(1.3%) 등도 수혜국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는 무역전쟁의 한 측면일 뿐이다. 글로벌 교역 위축으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다.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79.0%)이 압도적인 한국에 무역전쟁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국의 역할이 점차 상위단계로 발전하면서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전통산업에 이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첨단산업까지 중국의 추월이 가시화되고 있다.

‘차이나 엑소더스(중국 탈출)’는 무역전쟁 이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중국이 제조업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어서다. 미·중 무역분쟁은 이런 흐름을 가속화할 뿐이다. 애플이 생산시설 이전을 검토한 데는 중국의 저출산, 인건비 상승 등도 작용했다. 기업들의 딜레마도 있다. 무역전쟁의 영향을 피해야 하지만 제조 인프라와 숙련된 인력 등을 고려할 때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동남아는 인프라, 물류 능력 면에서 중국에 평균 10년 이상 뒤처져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공급망 조정이 신중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이 무역전쟁의 타격을 입겠지만 ‘세계의 공장’이란 위상은 쉽게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미·중 경제 디커플링 불가피

미·중 갈등은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속도와 범위는 향후 협상에 달렸지만 미·중 경제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은 불가피해졌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대격변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중국 관련 거래 다변화, 효과적인 생산기지 전환 등을 통해 무역분쟁의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중국 위주로 짰던 공급망 전략을 원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을 유연하게 가져가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화살은 베트남이나 인도로 향할 수도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새로운 성장전략을 짜는 것도 시급하다. 정부는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규제 혁파 등 시장 친화적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핵심기술을 발굴해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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