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쏟아지는 중소 車 부품사…韓 기술 노린 中 자본이 쓸어담나

입력 2019-07-03 17:20   수정 2019-07-04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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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업체들 "더 못 버틴다"
사겠다는 곳은 중국 업체뿐



[ 도병욱 기자 ]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얼마 전 회사를 매각하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다. 그는 “앞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누가 중소 부품사를 인수하겠냐”고 되물었다. 이어 “최대한 버티다가 정 안 되면 사업을 접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올 들어 세 차례 부품사 대표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부품사 대표들의 발언은 비슷했다. “내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많은 부품사 대표가 ‘공장 문을 닫거나 회사를 매각하고 싶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이미 2~3차 협력사들은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부품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라고 전했다.

사상 최악 성적표 받은 부품사

한국 자동차 부품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완성차업계의 생산 및 판매량은 지난해 바닥을 찍었지만 부품업계에서는 “올해가 작년보다 더 어렵다”는 하소연이 쏟아진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르노삼성자동차의 노사갈등 같은 악재가 이어진 탓이다. 완성차업체의 강도 높은 원가절감(부품 납품가 인하)과 글로벌 부품사의 한국시장 진출 등도 더해졌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86개 상장 부품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30.2%에 달하는 26곳이 지난 1분기 적자를 냈다. 서연이화, 에스엘 같은 ‘부품업계 대기업’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4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낸 곳도 수두룩하다. 비상장 중소 부품사의 사정은 더욱 나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부품업계 위기는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에서 비롯됐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중국 판매량이 급감하자 함께 중국에 진출한 부품사들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한 부품사 대표는 “현대·기아차만 바라보고 중국에 공장을 지었는데 납품량이 반 토막 났다”며 “중국 로컬 브랜드에 납품을 시도했지만 저가 공세를 펴는 현지 부품사를 이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부품사는 최근 중국 공장을 폐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엔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전북 군산지역에 자리잡은 부품사는 대부분 문을 닫아야 했다. 올해 초에는 르노삼성이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으면서 생산량이 반 토막 났다. 이 와중에 최저임금은 급격하게 올랐고, 부품사가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 규모도 불어났다. 자동차 부품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은행들은 대출을 꺼리기 시작했다. 한 부품사 재무담당 임원은 “일부 은행은 회사의 재무건전성이나 경영실적 등은 아예 보지도 않고 자동차 부품사라는 이유로 신규 대출을 안 해주겠다고 선을 긋는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거래하던 은행들도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겠다고 압박하고 있어 신규 투자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중국 업체, 한국 부품사에 눈독”

올 들어서는 중소 부품사들이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많은 2~3차 협력사 대표들이 회사를 팔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며 “회계법인을 찾아 관련 자문을 받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 협력사 대표도 꽤 많다”고 전했다. 일부 부품사 대표는 거래하던 1차 협력사에 공장을 넘기는 방식으로 회사를 처분했다. 공장을 인수해 주지 않으면 보유하고 있는 금형을 없애겠다고 1차 협력사를 협박한 사례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2차 협력사 대표가 부품 제조에 필수적인 금형을 없애고 잠적하면 그 회사와 거래하던 1차 협력사와 완성차 공장은 라인을 세워야 한다. 한 2차 협력사 대표는 “3~4년 전만 해도 300억~400억원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며 “올해는 150억원에 팔겠다고 내놨는데도 아무도 관심이 없어 결국 매각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자본이 한국 중소 부품사 인수를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장 경영 상황은 나쁘지만 기술력이 있는 한국 중소 부품사를 인수해 그 기술을 흡수하려는 의도다.

자동차업계에 오래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지난 4~5월부터 중국에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꾸준히 온다”며 “이들 대부분은 기술력이 있는 부품사가 매물로 나오면 연결해 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일부 부품사는 이미 중국 부품사와 매각 관련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뿌리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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