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 7월 통과 전제로 전망…추가하향 가능성
설비투자 1%서 -4%로…수출 작년보다 5% 급감 예상
"수출·내수 동반침체 고려할 땐 2.4% 성장도 낙관 못해"
[ 성수영 기자 ]
정부가 3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 지원이 미흡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담겼다.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 경쟁력이 약화됐지만 이를 대체할 신산업은 규제와 기득권 반발에 묶여 있어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산업마저 업황 부진과 무역분쟁으로 휘청이면서 경제 성장 및 미래 투자 전망치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 거시지표 목표치 줄하향
정부는 올해 거시지표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말 2.6~2.7%였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이번에 2.4~2.5%로 낮췄다. 지난해 7월 2.8%를 전망했는데 5개월 만에 2.6~2.7%로 내린 데 이어 또다시 낮춰잡은 것이다. 정부는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올해 성장률이 ‘상저하고’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며 하반기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예측은 수출, 투자 등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빗나갔다.
이억원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성장률 하향 조정 배경과 관련해 “대외여건이 크게 악화됐고 수출과 투자가 부진했다”며 “글로벌 경기둔화,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 반도체 가격 하락 지속 등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수요 측면의 3대 지표인 소비·설비투자·건설투자도 모두 하향 조정했다. 민간소비는 당초 2.7%에서 2.4%로 낮췄다. 설비투자는 1.0%에서 아예 -4.0%로 감소세 전환을 예상했고, 건설투자도 -2.0%에서 -2.8%로 감소폭이 더 커질 것으로 봤다. 이조차 추가경정예산이 7월에 국회를 통과한다는 전제로 계산된 전망치다. 추경 통과가 이보다 늦어지면 성장률을 비롯한 각종 지표도 더 떨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올해 수출이 지난해보다 5.0%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상수지 흑자는 605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말 전망(640억달러)에서 35억달러 줄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출 감소세, 내수 침체 등을 감안하면 올해 2.4% 성장률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19일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0%로 내려잡는 등 이미 해외 기관들은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하는 추세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2분기에 전기 대비 1.2% 성장해야 2.4% 성장률 달성이 가능한데 대외 여건 등을 보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정부 전망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 시장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수 증가폭을 지난해 말 예상(15만 명)보다 5만 명 늘린 20만 명으로 잡았다. 재정투입으로 생기는 단기 노인일자리 등으로 일자리 수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은 직전 전망치(1.6%)의 절반 수준인 0.9%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구조 노화·정책 실종 맞물려
정부는 “산업구조 전반의 혁신이 지체돼 성장잠재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저성장 원인을 지목했다. 1990년대 한국 수출 주력 산업이던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은 지금도 여전히 주력 산업이다. 20년 전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절반 이상이 여전히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 상위에 포진해 있던 제조업체들을 정보기술(IT)기업이 밀어낸 미국과 대조적이다.
역대 정부마다 신산업 육성을 외쳤지만 번번이 헛구호에 그쳤다. 전문가들이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초부품 소재 제조업을 키워야 한다고 10여 년 전부터 지적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대신 ‘생색내기용 중소기업 지원책’과 ‘재탕 삼탕 종합대책’만 되풀이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면서도 핵심 부품을 수입에 의존한 대가는 컸다.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강화하자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과감한 규제혁파를 통한 신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서지 않으면 향후 ‘2%대 성장’조차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은 “미래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를 사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미래를 위해 현재 고통을 분담하자는 얘기를 꺼내기가 정치적으로 부담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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