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고무 앞세운 금호석유화학
실적 역주행하며 재무건전성도 챙겨
일본 소재 수출 규제도 금호석유화학에게는 호재
금호석유화학그룹이 글로벌 경기를 역행하는 호실적으로 증권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생산설비 증설로 에틸렌과 범용수지 공급이 늘어나고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요는 감소한 탓에 글로벌 석유화학 시황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실적도 반토막이 예상되는 가운데 금호석유화학은 유독 두드러지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4일 증권가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1분기에 이어 2분기도 1400억원대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간판 제품마저 시황에 맞춰 생산량을 줄일 정도로 내실에 집중한 박찬구 회장의 경영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금호석유화학의 주력 제품은 신발이나 타이어에 사용되는 범용합성고무(SBR)로, 전체 매출의 60% 가량을 차지한다. 다만 천연고무 가격이 떨어지면 경쟁력을 잃는데다 중국발 공급 과잉까지 겹치며 한동안 2%대 낮은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금호석유화학은 최근 15만톤 규모 SBR 생산설비를 마진이 더 큰 특수고무 NBR 라텍스 설비로 교체하는 작업을 마쳤다. 실리에 초점을 맞춰 회사 주력 제품인 SBR 비중을 과감히 줄인 것이다. 공급 과잉이 심해 가동률이 떨어졌던 설비를 특수고무 생산 설비로 바꾸면 고정비용은 줄이고 추가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
금상첨화로 합성고무와 페놀, 합성수지 사업 모두 최근 원재료 가격은 하락한 반면 제품가에는 변동이 적어 이익률이 높아졌다. BR, SBR, NBR 등 합성고무 부문 제품 대부분의 스프레드는 톤당 500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합성수지 부문 역시 발포 폴리스티렌(EPS), 폴리프로필렌 글리콜(PPG), ABS 등의 스프레드가 톤당 400~600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주력 제품 대부분 1톤을 판매할 때마다 400~600달러의 이익이 발생하는 것. 2018년 금호석유화학의 BR 생산능력은 연간 66만톤에 달했다.
사업 포트폴리오와 함께 재무 상황도 지속 개선되고 있다. 2009년 금호그룹 형제의 난 당시 금호석유화학의 차입금은 2조2307억원, 부채비율은 498%에 달했다. 박찬구 회장이 키를 잡으며 금호석유화학은 차입금 상환을 최우선으로 했고 부채비율은 2012년 165%로 낮아졌다. 지난해 부채비율은 97%를 기록, 차입금이 1조4570억원으로 줄어들며 재무건전성이 대폭 개선됐다.
형제의 난을 계기로 갈라선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했다 매각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나선 것과 상반된 결과다. 금호그룹에서 갈라선 두 그룹은 재계 서열도 뒤바뀔 예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발표 자료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의 자산총액은 5조8320억원으로 재계 55위였다. 같은 발표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자산총액 11조4350억원으로 28위에 올랐지만,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나항공이 매각되면 60위권 밖으로 밀려나 중견그룹으로 분류되게 된다.
최근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나서며 금호석유화학의 성장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일본의 수출 규제 대상에는 반도체 감광액(포토 레지스트)이 포함됐는데 국내에서 금호석유화학이 생산하는 품목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7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은 극자외선 노광장비(EUV)를 사용하기에 일본산 감광액이 필요하지만, 주력 제품인 10나노미터급 D램 양산에는 EUV 장비를 쓰지 않아 금호석유화학 감광액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소재·부품산업 투자를 통해 국산화를 추진하기로 한 점도 금호석유화학에게는 반가운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각종 소재를 생산하는 석유화학 산업은 첨단 산업도 아니고 발전의 속도도 매우 느리기에 정부의 관심을 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일본의 규제를 계기로 그간 내실을 다져온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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