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의 반란] 1초에 11.6병씩 팔렸다…'카스처럼' 위협하는 '테슬라'

입력 2019-07-04 09:15   수정 2019-07-04 14:28

'청정 라거' 테라 돌풍…100일 만에 1억병 판매 돌파
맥주 시장서 내리막길 걷던 하이트진로 점유율 반등 전망

테라와 소주 '참이슬' 섞은 폭탄주 '테슬라'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 아성에 도전장





하이트진로의 '테라(TERRA)'가 맥주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차별화된 원재료와 함께 청정·자연·친환경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청정 라거'를 표방한 점이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찾아낸 고소한 호주 골든트라이앵글 맥아(싹이 난 상태의 보리)를 원료로 고급화한 상품이지만 가격은 기존 하이트 수준을 유지해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도 만족시켰다. 이는 매출로 증명되고 있다. 테라는 지난 3월 21일 출시한지 100일 만에 1억병 넘게 팔려나갔다. 1초당 11.6병씩 판매되며 '역대급' 기록을 연일 숨 가쁘게 갈아치웠다. 맥주 시장 2위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선보인 발포주 '필라이트'에 이어 테라로 연타석 흥행 홈런을 쳤다. 2012년 카스에 맥주 시장 일인자 자리를 뺏긴 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던 점유율도 반등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 하이트진로의 승부수 '테라', 지구 한 바퀴 돌아 호주서 찾은 맥아…맛·디자인·가격 삼박자

테라는 하이트진로가 '맥주 시장 탈환'을 목표로 6년 만에 출시한 비장의 무기다. 하이트진로는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맥주사업의 시장 점유율이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테라 카드를 꺼내들었다.

5년간 고심한 끝에 '청정 라거'란 콘셉트로 승부수를 띄웠다. 초미세먼지 경보가 일상화된 가운데 청정·자연·친환경 수요 증가를 염두에 두고 인위적인 주입이 없는 자연주의적 공법을 내세웠다.

우선 원료 차별화를 강조했다. 하이트진로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2년간 북유럽부터 남반구 국가까지 맥아를 재배하는 전세계 지역을 전부 찾아다녔다는 후문이다. 그 결과 전세계 공기질 부문 1위를 차지한 호주에서도 청정지역으로 유명한 삼각지대인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의 맥아를 만나게 됐다.

골든트라이앵글은 비옥한 검은 토양을 갖춘 지역으로 데이터 농법, 차량통행 제한, 토양 교란 최소화, 야생동물과의 공존 등을 통해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맥아는 일반 맥아보다 고소한 맛이 더 강해 택하게 됐다고 하이트진로 측은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고품질 맥아로 만든 라거 특유의 청량한 맛과 부드럽고 조밀한 거품을 자신한다. 발효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리얼탄산'만 담았다는 점도 포인트다. 리얼탄산을 별도로 저장하는 기술과 장비를 새로 도입했다.

제품명은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의 이미지와 청정, 자연주의를 반영해 라틴어로 흙, 대지, 지구를 뜻하는 테라로 지었다.

'보는 맛'에도 공을 들였다. 콘셉트를 반영해 '그린'을 브랜드색으로 결정하고 국내 맥주 브랜드 중에서는 처음으로 녹색병에 담았다. 병 어깨 부분에 토네이도를 연상시키는 무늬를 넣어 맥주의 청량감을 한 번 더 강조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도 챙겼다. 원료 고급화에도 불구하고 테라의 출고가는 기존 대표 브랜드 하이트와 같은 수준인 355mL 캔 1238.95원, 500mL 병 1146.66원으로 책정했다. 경쟁사들이 최근 카스, 클라우드 출고가격을 인상했지만 테라는 가격을 유지한 점도 소비자들의 발길을 끈 것으로 풀이된다.

1년 안에 테라의 시장점유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린다는 게 하이트진로의 목표다. 주력제품을 하이트에서 테라로 교체하는 과정도 진행할 계획이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는 "필라이트로 시작돼 테라로 이어지는 맥주 시장 판도 변화와, 국내 소주 1위 브랜드 참이슬과 신제품 진로 효과로 더욱 견고해진 소주 시장이 결합해 올해는 실적 턴어라운드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테라, 출시 초기 신기록 행진…100일 만에 1억병 판매

시장의 반응은 빠르고 강했다. 하이트진로의 예상을 웃돌았을뿐 아니라 국내 맥주의 출시 초 최대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테라는 출시 39일 만에 330mL 기준으로 100만상자·3200만병이 팔려나갔다. 첫 달 판매량이 30만 상자 수준이던 스테디셀러 '하이트'·'맥스'의 서너배에 달했다.

하이트진로는 출시 보름 만에 전체 판매 목표를 조정하고 2배 이상 생산량을 늘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밀려드는 주문에 생산속도를 맞추지 못해 지난 5월 중순 주류도매사에 공급지연에 대한 안내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이후 판매에는 한층 가속도가 붙었다. 72일 만에 200만상자, 97일 만에 300만 상자 판매고를 기록했다. 101일째인 6월 29일 누적판매량이 330mL 기준 334만 상자·1억139만병을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1년 판매 목표인 1600만 상자 판매도 무리 없이 달성할 것이란 관측이다. 하이트진로는 이달 중순부터 테라 생맥주를 내놓으며 초기 돌풍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내리막 걷던 맥주 점유율·실적 반등 기대…테슬라와 함께 '쭉쭉'

테라의 흥행으로 하이트진로 맥주 부문에 반등 청신호가 켜졌다. 시장점유율과 실적 개선 전망에 힘이 실린다.

하이트진로는 업소용 주류 격전지인 유흥시장(일반음식점과 주점)에서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이트진로의 6월 유흥시장 맥주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45% 급증했다. 2017년 전년 대비 -23%, 2018년 -21%를 기록해 위축되던 수치가 급반등한 것이다. 6월 하이트진로 전체 맥주 판매량도 전년 동월 대비 약 5% 증가했다.

유흥시장 판매량 급증 배경에는 '테슬라'가 있다. 전기차 브랜드가 아니라 테라와 하이트진로의 소주 '참이슬'을 섞은 폭탄주를 부르는 이름이다. 테슬라는 폭탄주 시장에서 대세로 통하던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거 카스처럼은 오비맥주의 카스가 하이트를 제치고 시장 1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최근 술자리에서 테슬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향후 향배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 테라의 매출이 300억원을 웃돌 것이란 관측이 줄을 잇고 있다. 연매출 1000억원 돌파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시장 안착을 위해 집행된 마케팅비 때문에 2분기 하이트진로의 영업이익은 감소하겠지만 맥주 부문 매출 증가가 기대된다는 게 중론이다.

후퇴를 이어가던 맥주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1996년부터 국내 맥주시장의 일인자 자리를 지켰던 하이트맥주는 2012년 왕좌를 오비맥주에 내줘야 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국산 맥주 점유율은 약 30% 수준으로 오비맥주(60%)와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태다. 하이트진로는 테라 돌풍에 힘입어 점유율이 40%대로 바뀌길 기대하고 있다.

차재헌 DB금융투자 연구원은 "5월부터 하이트진로의 레귤러 맥주 판매량이 증가세로 전환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올해 말께 맥주시장 점유율은 30%중반대 회복도 가능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테라의 성공과 함께 내년에는 맥주 부문 영업이익 흑자 전환을 기대할 만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4년부터 하이트진로의 맥주 부문은 영업적자로 전환해 5년 연속 손실을 냈다. 지난해에만 203억원 적자를 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하이트진로의 맥주 부문 영업이익이 올 하반기 중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으로는 내년에 흑자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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